TL;DR
한국과 일본은 각 테라·루나 사태, 코인체크 해킹사건 등 대형 악재 이후 가상자산 자율규제 협의 및 얼라이언스를 출범하였으며,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및 효율적인 규제 방안 마련에 앞장 서고 있다.
또한 각 국의 정부는 당 협회 및 얼라이언스를 가상자산 시장의 단일채널로써 전체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제 및 관리하는 등 이들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해 이해하고 내부 프로세스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시장 내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를 통한 자율적인 규제가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가상자산 거래소의 높은 가상자산 시장 이해도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건강한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주장도 있다.
들어가며
최근 2023년 4월 유럽연합의 가상자산 규제법 ‘MiCA(Markets in Crypto Assets)’ 법안이 통과하고, 2022년 6월 미국의 ‘책임있는 금융혁신법안(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이 발의되는 등 일부 선진국가에서는 국가 주도 하 적극적인 가상화폐 거래소 규제가 이루어지는 추세이다.
한국·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도 이와 유사한 규제안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그 세부적인 형태는 사뭇 다르다. 우선 정부의 강력한 권고로 1) CEX간 자율적인 가상화폐 규제 및 협의를 진행할 수 있는 협회 및 얼라이언스가 출범하였으며, 2) 정부는 당 협회 및 얼라이언스를 가상자산 시장의 단일채널로써 전체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제 및 관리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한국은 원화거래가 가능한 5곳의 거래소를 중심으로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igital Asset eXchage Alliance, 이하 DAXA)가 구성되었으며, 일본은 16곳의 거래소를 중심으로 일본가상화폐거래협회(Japan Virtual Currency Exchange Association, 이하 JVCEA)를 출범하였다.
자율규제 기구별 주요 회원사 리스트
따라서 한국·일본 가상자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 내 각종 가상자산 관련 규제안 외에도 이 두 조직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해당 국가로의 진출을 당장 고민하고 있지 않더라도, 한국·일본은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량의 약 10% 정도(약 $280B 추정)를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의 시장이며, 가상화폐 거래소도 갈수록 높은 성장율(2021년 대비 2022년 거래량 각각 46%, 80% 증가함)을 기록하는 추세이기에 진출을 고민해봐도 좋을 시장으로 전망된다. 본 글에서는 두 국가 내 가상자산 시장의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조직을 중심으로 분석하며 해당 국가들의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가상자산 자율규제 기구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
각 국의 가상자산 자율규제 기구는 일련의 가상자산 관련 사건, 사고 이후 설립되었다. 우선 일본의 경우 2018년 1월 일본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체크 해킹 사건 발생한 뒤, 한국의 경우 2022년 5월 테라·루나 사태 등 가상자산 시장 내 악재가 발생하며 본격적으로 자율규제 기구 구성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두 조직은 기본적으로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와 강화된 규제 방안 마련을 통해 시장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배경 및 목적을 갖고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극명한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도 존재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법적 권한 여부'이다. 우선 일본의 JVCEA는 2018년 10월부 일본 금융청(Financial Services Agency, 이하 FSA)에서 자금결제법상 자율규제 기관으로 인정받으며 정부 인가 공식 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일본 내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라이센스 부여나 거래소의 상장 종목 결정 등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한국의 DAXA는 법적인 권한이 없는 비공인 성격을 지닌 민간 조직이며, 그저 정부와 가상자산 시장의 소통 채널로서의 역할에만 그치는 등 비교적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해당 기관이 거래소나 가상화폐 프로젝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며, 단순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또한 일본과 비슷한 형태의 공식 정부기관 출범을 조심스럽게 예상해볼 수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인허가 프로세스는 어떻게 다른가?
일본 내 가상자산 거래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요구된다. 우선, 6개월에 걸친 1) FSA 심사를 통과해야만 하며, 2) JVCEA에서 발급하는 가상자산 사업자 라이센스 중에서도 ‘제1종 회원'을 취득해야만 한다.
JVCEA에서 발급하는 가상자산 사업자 라이센스는 총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제2종 회원의 경우 FSA 심사를 준비하거나 예정인 사업자, 즉 FSA 심사를 통과하지 않은 상태더라도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제1종 회원의 경우 FSA 심사를 통과한 뒤 가입할 수 있다. 그 밖의 사업자인 경우는 제3종 회원으로 분류되나 아직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제2종 회원에서 제1종 회원으로 승격하는 과정이 비교적 수월할 수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나 탈락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영국의 가상화폐 결제 플랫폼 와이렉스(Wirex)는 FSA 심사와 제2종 회원 발급을 완료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제1종 회원으로 승격하지 못하여 일본 시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JVCEA 가상자산 사업자 라이센스 종류]
제 1종 회원: 가상자산 교환업자, 가상자산 관련 파생 상품 거래업자 등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취득한 회원
제 2종 회원: 가상자산 교환업자, 가상자산 관련 파생 상품 거래 등록을 신청하거나 신청을 예정하는 사업자(금융당국의 승인을 기다리는 사업자)
제 3종 회원: TBD
한국 DAXA의 경우, 일본 JVCEA와 달리 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민간 기관이다. 이에 거래소 사업권 부여나 운영 등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제한적인 상황이며, 이들 보다는 주로 금융정보분석원(Financial Intelligence Unit, 이하 FIU)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등 정부 기관을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 사업권이 부여되는 형태이다. 예를 들어, 가상자산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FIU 측으로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서류를 제출하고, FIU는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심사를 금감원 측으로 의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가상화폐 상장 프로세스는 어떻게 다른가?
두 국가에서의 가상화폐 프로젝트 상장 과정도 상이한데, 이 또한 각 자율규제 기구의 법적 권한 여부에 따라 발생하는 차이로 판단된다.
우선 일본의 경우 가상화폐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JVCEA의 직접적인 개입이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거래소에 가상화폐가 상장되기 위해서는 사전 심사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하며 심사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거래소의 가상화폐에 대한 투명성, 안정성, 시장성 등 평가 과정을 마친 뒤, 2) JVCEA의 가상화폐 화이트리스트 심사 과정을 거친다. 최종적으로는 3) FSA 심사를 마치고 나서야 거래소 상장이 가능한 구조이다. 상장된 이후에도 JVCEA와 FSA에 의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및 관리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JVCEA 외에도 다른 주체들과 교차 검증 과정을 거치며 보다 안전하고 투명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심사 과정이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을 저해하고, 일본 이용자들이 해외 거래소로 빠져 나가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화이트리스트 심사 과정이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엄격한 심사 과정이기에 선제적인 시장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시장의 불만을 JVCEA 내부에서도 인지하고 조금 더 효율적인 상장 지원을 위해 2022년 3월 부 ‘그린리스트’ 제도 시행을 발표하였다. 그린리스트 제도는 사전 심사 과정 없이 거래소 자율적인 판단 하에 상장할 수 있는 Fast Track 제도이다. 심사 과정 간소화를 통해 JVCEA의 영향력이 다소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린리스트 등재 조건 자체가 JVCEA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조건들이며, 오히려 사후 심사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JVCEA의 지대한 영향력이 여전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린리스트 등재 조건]
JVCEA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본가상자산 거래소 3곳 이상에서 취급하는 가상화폐 프로젝트일 것
상장된 거래소 3개 중, 최소 1개 이상의 거래소에서 상장된지 6개월 이상이 지난 가상화폐 프로젝트일 것
JVCEA가 상장 필수 조건을 설정하지 않은 가상화폐 프로젝트일 것
상장 시 JVCEA에서 지정한 결격 사유가 없는 가상화폐 프로젝트일 것
한국의 DAXA는 정부로부터 규제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민간 기관이기 때문에 JVCEA와 달리 가상화폐 프로젝트 상장 과정에서 개입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며, 단순히 협회 차원에서 상장 기준을 세우고 제시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다만, DAXA 협회가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화거래소 5곳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들의 목소리가 가상화폐 상장에 간접적인 영향은 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마치며
한국과 일본 내부적으로 정부 주도 하 가상자산 규제안이 속속 등장하고 있으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해당 국가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자율규제 방안도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각 국의 정부도 이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협의체를 구성하도록 권고하였으며, 이들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 전체를 관리 및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자율규제 기구가 과연 투명하고 안전한 시장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는 1) JVCEA와 DAXA와 같은 자율규제 기구의 존립 기반이 가상자산 거래소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 협회 사무국 자체가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용성을 의심한다. 또한, 3) 협회 내부 구성에 있어서도 아쉽다는 주장도 있다. 일례로 JVCEA 조직 구성 자체가 일본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체크에 의해 실효적인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내부 갈등까지 발생해 노동조합까지 결성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DAXA에 대한 업비트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며, 실제 2022년 11월 위믹스 상장 폐지 결정 시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위믹스 코인 상장폐지는 업비트의 갑질이다"라는 주장을 남기기도 했었다. 추가로, DAXA는 대형 거래소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중소형 거래소의 입장을 대변하기 어렵고 통제도 어려운 상황이다. 위믹스 공동 상장 폐지 결정 시, 중소형 거래소인 GDAC은 DAXA의 결정과는 반대로 위믹스를 상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가상자산 거래소 업계 내 불안한 모습을 일부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가상자산 시장 내 자율규제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는 주장도 있는 반면, 자율규제 기구를 통해 비로소 건전한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오히려 가상자산 거래소의 높은 시장 이해도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일각의 우려스러운 점도, 자율규제 기구에 대해 최소한의 법적 권한을 부여하되 독자적인 행보를 막을 안전장치까지 마련할 수 있다면 일부 문제점도 충분히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추가로 한국에서는 아직 일본의 자율규제 기구인 JVCEA처럼 법적 근거를 지닌 공식 기관이 존재하지는 않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일본과 유사한 형태의 공식 정부기관의 출범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이는 최근부터 한국 가상자산 업계 내 일련의 부정적 사건·사고들을 통해 DAXA와 같은 자율규제 기구에 대한 법적 권한 마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기존 가상자산 관련 이해관계자(DAXA, 거래소, FIU, 금감원 등)들간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번져질 가능성도 일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