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L;DR
가상자산의 등장으로 기존 회계기준으로는 가치 평가가 어려워져,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이에 한국 규제당국은 "가상자산도 기존 자산처럼 투명하고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고 공시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가상자산 회계처리 감독지침'을 2023.12.20에 발표했다.
감독지침은 1) 백서에 명시된 수행 의무 완료 후 수익 인식, 2) 유보 토큰의 자산 인식 불가, 3) 주석공시 강화, 4) 거래소 고객 예치금의 경제적 통제권에 따른 회계처리 판단 기준 등을 명시하여 가상자산의 투명한 회계 처리를 목표로 한다.
새로운 회계 기준 도입은 시장의 투명성을 일부 개선할 전망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회계감사 강화, 기업들을 위한 컨설팅 및 교육 제공, 글로벌 정합성 제고를 위한 국제 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1. 회계, 기업의 건강함을 확인하기 위한 기준
"회계는 기업의 언어다." 이 말은 회계정보가 기업의 재무상태와 경영성과를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기에 널리 쓰이는 표현이다. 하지만 최근 가상자산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회계기준으로는 이 새로운 자산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려워졌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마치 제2외국어로 쓰인 재무제표를 보는 것처럼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 규제당국이 가상자산 회계기준을 마련한 건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발표된 '가상자산 회계처리 감독지침'의 핵심 메시지는 "가상자산도 기존 자산처럼 투명하고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고 공시하라"는 것이었다. 여러 국가의 규제당국에서 고심 중인 가상자산 공시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기에 접근 방식에 대해 면밀하게 살펴봐야할 것이다.
2. 한국의 가상자산 회계기준 도입 배경과 의의
한국은 1인당 가상자산 보유율과 거래량이 세계 최고 수준일 만큼 관련 산업이 발달한 나라다. 하지만 급성장하는 시장에 비해 제도적 기반은 충분치 않았다. 기업들이 제각각의 기준으로 가상자산을 평가하고 공시하다 보니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화되고, 투자자 보호에도 취약한 상황이었다.
가상자산은 기존 자산과는 그 특성이 많이 다르다. 디지털 형태로 존재하며 가격 변동성이 크고 실물 경제와의 연계성도 약한 편이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가상자산을 기존의 회계 잣대로 평가하고 분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회계처리 방식도 제각각이라 기업 간 재무제표를 비교하기도 어려운 현실이었다.
이에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시장에 투명성과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해 관련 회계기준 마련을 서둘러 왔다. 2023년 7월 가상자산 보유 공시 의무화에 이어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1년 넘게 논의를 거듭한 끝에 감독지침 초안을 마련하여 그 방법까지 제시한 것이다.
3. 가상자산 회계처리 감독지침의 핵심 내용
3.1. 백서 내 수행의무 완료 후 수익 인식
감독지침은 수익 인식을 백서에 명시된 수행의무를 모두 완료한 시점에 인식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전통적인 사업과 달리 가상자산 프로젝트의 수행의무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발행사와 감사인 모두 수행의무 기록 및 식별에 주의하며 회계/재무팀뿐 아니라 사업팀의 적극적인 협력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A사가 발행한 토큰의 백서에 '1차 Phase까지 토큰을 사용할 수 있는 슈팅 게임 개발을 완료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수익 인식 시점은 슈팅 게임 개발이 완료되고 토큰 보유자가 실제로 플랫폼 내에서 토큰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때가 된다.
3.2. 유보 토큰, 자산으로 인식 불가
유보 토큰이란 내부에서 보관 중인 토큰을 말하며, 이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자산으로 인식할 수 없다. 하지만 해당 토큰이 실제 배분되는 시점에는 자산이나 부채로 계상될 수 있어, 유보물량과 배분계획을 투명하게 공시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가령 B사가 총 1,000만 개의 토큰을 발행하면서 현재 500만 개는 유통 중이고, 나머지 500만 개는 내부적으로 유보하고 있다고 가정하겠다. 이때 유통 중인 500만 개의 토큰만 자산으로 인식되고, 유보된 500만 개의 토큰은 아직 자산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향후 유보 물량 중 100만 개를 시장에 추가 배분할 계획이라면,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시해야 할 것이다.
3.3 주석공시 강화 요구
회계처리 기준과 더불어 가상자산 정보 공시 의무도 크게 강화되었다. 특히 유통량 같은 민감 정보를 주석에 상세히 기재하고 외부 감사도 받도록 했다. 1) 백서 주요 내용, 2) 유보 및 무상배포 현황, 3) 고객 예치금 계약 내용, 4) 보관 리스크 등이 필수 공시 대상이다.
예컨대 C사의 경우 총 발행량 1억 개 중 현재 유통량이 6,000만 개, 유보량이 2,000만 개, 무상배포 물량이 2,000만 개라고 한다면, 각각의 물량과 시점, 배포 계획 등을 주석에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아울러 자사 플랫폼에 예치된 고객의 토큰이 1,000만 개라면 그 규모와 관리 방법, 해킹 등의 리스크 내용도 투명하게 공시해야 하는 것이다.
3.4. 거래소의 고객 예치금, 경제적 통제권에 따라 인식 여부 판단
거래소는 고객이 맡긴 가상자산에 대한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져 회계처리 해야 한다. 거래소가 통제권을 갖는다면 해당 자산과 고객에 대한 채무를 각각 인식하고, 그렇지 않다면 주석에 관련 정보를 상세히 공시해야 한다. 통제권 판단 시에는 계약서나 법규는 물론, 해킹 사고 발생시 고객 재산권 보호 수준 등 국제적 기준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거래소 D사에 예치된 고객의 비트코인이 1만 개라고 가정해 보겠다. 만약 해킹 사고 발생 시 고객 자산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보상한다는 내용이 약관에 명시되어 있다면, 실질적인 통제권은 거래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D사는 예치금을 자산과 부채로 인식하기보다 주석에 관련 정보를 공시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4. 회계기준 마련과 함께 열린 기회
회계기준 감독지침이 마련됨에 따라, 재단, 거래소, 지갑 등 각 사업자들은 투명성과 신뢰성 제고를 위해 회계 및 공시 기준을 준수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재단은 토큰 발행자와 수령자에 대한 명확한 공시, 최초 발행 시점 공시, 특수관계인 공시, 최초 상장 시 배분 플랜 공시 등을 이행해야 하며, 재단의 이익과 투자자의 이득을 분리하여 공시해야 한다.
거래소는 재단 측 정보 및 유통량, 커스터디 공시, 상장 시점 유입 물량 공시, 매월 정기 유입 물량 및 물량 속성 공시 등을 이행하고, 거래량에 따른 거래 수익을 공시할 필요가 있다.
지갑 사업자는 현재 공시 대상이 아니지만, 향후 재단과 거래소의 공시를 상호보완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각 사업자들이 가상자산의 지갑 관리, 회계인식 시점, 가격 평가 등을 일일이 처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각 사업자별 회계 및 공시에 대한 니즈가 존재하는 만큼 관련 솔루션 시장은 성장 기회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몇몇 회사들이 회계 솔루션 사업에 진출하여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닥, 쟁글, 헥슬란트 등이 있다. 지닥은 2022년 우리펀드서비스와 함께 가상자산사업자 지갑회계 서비스를 출시하였으며, 현재 리뉴얼 작업 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쟁글은 ‘쟁글 ERP’ 서비스를 베타 서비스하고 있으며 공시 포탈 운영 경험을 살려 회계 기준뿐만 아니라 적정한 공시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마지막으로 헥슬란트는 오랜 지갑사업자 경험을 살려 텍스테크 스타트업 브릿지코드 등과 협업하여 옥텟 지갑 세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가상자산에 대한 기업 투자가 일반화된다면, 현재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외에도 더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서비스를 필요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회계 솔루션 사업에 진출한 이들의 사업 동향과 관련 법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5. 필요한 후속 조치들
새 기준 도입으로 한국 가상자산 시장의 투명성은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하지만 제도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선 후속 과제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회계감사를 대폭 강화해 기준 준수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고, 위반시엔 엄중 제재하는 등 실효성 확보 방안이 시급해 보인다. 기업들의 원활한 제도 이행을 뒷받침하기 위한 컨설팅, 실무자 교육 등도 필요할 것 같다.
글로벌 정합성 제고도 중요한 과제다. 가상자산 시장이 국경없는 시장인만큼, 궁극적으로는 국제기준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 한국도 IASB(국제회계기준위원회),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등에서 논의되는 기준 제정에 적극 참여하고,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한국의 선도적인 행보가 글로벌 논의를 촉발하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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