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L;DR
싱가포르는 가상자산 시장을 빠르게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한편, 느슨한 가상자산 규제 체계와 자유로운 시장 분위기를 강조하며 다수의 블록체인 기업이 유입될 수 있는 매력적인 환경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가상자산 기업이 잇따라 문제를 일으키게 되며, 규제 당국은 투자자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으로 가상자산 허브로서의 지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싱가포르는 지속적인 규제 개선을 통해 명확한 규제 프레임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주로 1) 사각지대에 놓인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2) 보다 더 강력한 투자자 보호 정책을 통해 가상자산 허브로서의 지위를 다시 공고히 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크립토 파라다이스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홍콩, 두바이와 함께 블록체인 시장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가상자산 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며, 퍼스트 무버로서의 수혜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싱가포르는 블록체인 기업이 진입하기에 매력적인 시장인데, 1) 낮은 법인세율과 같이 기업친화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고, 2) 싱가포르 국민의 높은 구매력을 바탕으로 유동성 확보가 원활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싱가포르는 ‘크립토 파라다이스'라 불리며 많은 블록체인 기업이 유입되었다.
정부 방침 히스토리: 잠시 쉬어가며 재정비하는 싱가포르
싱가포르 정부의 가상자산 방침 흐름을 살펴보면 상당히 흥미로운데, 우선 싱가포르는 가상자산 시장을 가장 빠르게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킨 선도적인 국가이다. 싱가포르는 자국 내 20년 1월 발효된 ‘지급서비스법(Payment Service Act, 이하 PSA)’을 통해 가상자산 규제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된 이유로 수많은 블록체인 기업이 싱가포르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22년부터 싱가포르는 아시아 가상자산 허브로서의 입지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싱가포르 내 본사를 둔 가상자산 기업들이 잇따라 파산하며 문제를 일으킨 것에서 초래되었다. 대표적으로 크립토 윈터를 촉발시킨 ‘테라폼랩스'와 테라·루나 사태로 인해 파산한 ‘3AC’ 등이 있다. 주로 규제 당국으로서 투자자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비난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싱가포르는 느슨한 규제 체계를 통한 시장 활성화가 아니라, 1) 더욱 명확하고 강력한 규제 체계를 세우고, 2) 포괄적인 위험관리를 통해 가상자산 허브로서의 입지를 다시 다지겠다는 실질적인 개선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이러한 싱가포르의 의지가 투영된 규제 개선의 핵심사항은 다음으로 두 가지 항목으로 정리되는데, 첫 번째로 사각지대에 놓인 기존 규제안의 허점을 해소하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강화된 규제안을 바탕으로 리테일 투자자를 확실히 보호하겠다는 강경한 의지이다. 예를 들어, 22년 4월 금융시장서비스법(Financial Services and Markets Act, 이하 FSMA)을 통과시키며 가상자산 규제를 한층 더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기존 PSA 법안에서는 싱가포르 자국민을 대상으로한 가상자산 서비스만이 라이선스 의무 취득 대상이었으나, 해당 법안에서는 싱가포르 역외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자까지도 라이선스를 의무 취득하도록 규제 범위를 넓혔다. 또한 최근에는 리테일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리테일 투자자의 가상자산 스테이킹 및 랜딩 서비스 이용을 금지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 같은 조치를 통해 싱가포르는 아시아 가상자산 허브로서의 손상된 명성을 회복하고, 다가올 크립토 스프링을 위해 다시 법안을 재정비하는 등 잠시 한 걸음 물러서서 재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PSA 라이선스 요건: 서비스 종류와 규모에 따른 차등적 규제
싱가포르는 가상자산 규제를 PSA 법안에서 주로 다루고 있으며, 이를 싱가포르 통화청(이하 MSA)에서 관리 감독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특이하게 싱가포르는 타 국가의 VASP/VATP 라이선스와 같이 가상자산 특화된 면허 체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금융 결제 라이선스와 함께 포괄적인 형태의 라이선스로 운영되고 있다. PSA 법안이 제정된 히스토리를 살펴보면 이해가 빠른데, 해당 법안의 근간이 ‘결제시스템에 관한 법률(2006)’과 ‘환전 및 송금 사업에 관한 법률(1979)’이 통합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두 법안의 내용을 통합시키고, 새로운 결제 서비스 형태인 가상자산을 ‘디지털 결제 토큰(Digital Payment Token, 이하 DPT)’으로 정의하며 신규 규제 대상으로 포함시키게 되었다.
해당 법안에서는 다음과 같이 총 세 개의 결제 서비스 관련 라이선스를 다루고 있다. 1) 환전 사업자 라이선스(Money Changer License), 2) 일반 결제기관 라이선스(Standard Payment Institution License), 3) 주요 결제기관 라이선스(Major Payment Institution License)이다. 이 중에서도 DPT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일반 결제기관’이나 ‘주요 결제기관' 라이선스가 필요하다.
두 라이선스는 제공하는 결제 서비스의 범위와 규모에 따라 상이한데, 우선 일반 결제기관 라이선스는 주로 소규모 사업자를 위한 라이선스이며, 비교적 규제 수준이 낮아 쉽고 빠르게 발급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거래량 및 유동성 제한이 있어 월 평균 거래액이 최대 6백만 싱가포르 달러를 넘으면 안된다. 다음으로 주요 결제기관 라이선스는 높은 거래량이 예상되는 대규모 사업자를 위한 라이선스이며, 기본적으로 일반 결제기관 라이선스에서 부과된 의무를 이행해야한다. 이 외에도 개인계좌 개설에 대한 추가 조건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다만 유동성 제한이 없기에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1) 최소 자본금
싱가포르 내 가상자산 사업을 위해 1) 기본 자본금 확보, 2) 현금 담보 요건 달성이 필요한데, 라이선스 종류에 따라 금액과 요건이 상이하다. 우선 주요 결제기관은 기본 자본금이 25만 싱가포르 달러, 예치된 현금 담보는 20만 싱가포르 달러(거래액 6백만 싱가포르 달러 미만일 경우, 10만 싱가포르 달러 담보 필요)가 필요하여 총 45만 싱가포르 달러가 준비되어야 한다. 반면 일반 결제기관은 기본 자본금 10만 싱가포르 달러만 있으면 된다.
2) 라이선스 비용
가상자산 라이선스 신청에 따라 1) 가입비용, 2) 갱신비용 납부가 필요한데, 주요 결제기관 라이선스는 신청비용 1,500 싱가포르 달러, 매년 갱신비용으로 1만 싱가포르 달러의 비용이 발생한다. 일반 결제기관 라이선스는 신청비용 1,000 싱가포르 달러, 매년 갱신비용으로 5천 싱가포르 달러의 비용 납부가 필요하다.
3) 운영인력 기준
PSA 라이선스 신청을 위해 다음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를 만족해야하는데, 1) 최소한 1명 이상의 싱가포르 시민/영주권을 가진 상임이사가 있거나, 2) 싱가포르 국적의 비상임 이사 최소 1명, 싱가포르 취업비자(EP)를 가진 최소 1명의 전무이사가 요구된다.
4) 거래 자격 평가
싱가포르도 홍콩과 마찬가지로 가상자산 투자자의 지식을 평가하는 항목이 존재한다. 가상자산 사업자는 DPT 서비스를 제공하기 전에 DPT 리테일 투자자가 투자 위험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한다.
5) 광고 금지 정책
싱가포르는 22년 1월에 ‘디지털 결제 토큰 사업자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는데, 해당 가이드라인에서는 DPT 사업자는 대중교통, 버스정류장과 같은 공공장소 뿐만 아니라 방송, 포털, 소셜미디어 등에서도 광고를 할 수 없으며, 오직 자체 웹이나 앱, 공식 SNS 계정을 통해서만 자사 서비스를 홍보할 수 있음을 발표하였다.
주요 항목 요약 정리
싱가포르도 홍콩과 동일하게 리테일 투자자 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금융 결제 서비스를 PSA 법안을 통해 포괄적으로 다루다 보니, 가상자산 라이선스도 일반적인 금융업 라이선스와 유사한 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싱가포르에서는 DPT 광고 금지 정책을 통해 높은 수준으로 투자자 보호에 힘쓰는 것을 알 수 있고, 심지어는 리테일 투자자에 대한 가상자산 스테이킹, 랜딩 서비스 이용을 금지시키는 등 앞으로도 싱가포르의 가상자산 규제안은 투자자 보호에 더 초점을 맞춘 형태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싱가포르의 최소 자본금 수준도 흥미로운데, 홍콩의 최소 자본금인 500만 홍콩 달러에 비해 ¼ 수준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타 국가와 비교해봐도 상당히 저렴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싱가포르의 기업친화적인 정책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일반 법인 설립에 필요한 최소 자본금은 단 돈 1달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해되는 결과이다.
법인세 등 세제 혜택: 가상자산 라이선스 신청기간 동안 세금 면제
싱가포르는 가상자산 관련 라이선스 취득 기업에게 별도로 세금을 가면해주는 제도는 없다. 다만 싱가포르는 기본적으로 17%의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하고 있어 싱가포르로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싱가포르는 규제 당국으로 가상자산 라이선스를 신청한 기업에 한해 발급 기간동안 세금 면제 혜택을 주고 있다. 이러한 혜택은 가상자산 사업을 처음 빌딩하기 시작해 신청부터 발급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스타트업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가상자산 라이선스를 신청하고 발급받기까지 최소 6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혜택은 무시 못할 수준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 외에도 싱가포르 정부는 기업 친화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어 세제 혜택이 아니더라도 다방면에서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규제 개선을 통해 성숙해지는 싱가포르 시장
싱가포르는 가상자산 규제안 마련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규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가이다. 이 같은 규제 개선을 두고 일각에서는 기존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혼란을 야기하고, ‘크립토 파라다이스'라는 싱가포르만의 자유로운 시장 분위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규제를 개선하는 것은 사각지대에 놓인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건실한 시장 환경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라는 긍정적인 입장도 주장된다. 따라서 싱가포르 내 블록체인 사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팀에게 이러한 명확한 규제안은 변화무쌍한 가상자산 시장에서 오히려 안전장치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도 있고, 낮은 리스크를 바탕으로 원활히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으로도 예상된다. 또한 싱가포르의 법 제정 방향이 기본적으로 기업 친화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급격한 규제 변화나 극단적인 상황으로 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에 싱가포르로의 프로젝트 진입을 고려해봐도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