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Takeaways
한국은행은 ‘2025년도 지급결제보고서’를 통해 거래소의 내부통제 부재를 공식 지적하고, 서킷브레이커 도입을 포함한 거래소 관리 강화 검토 필요성 제시
암호화폐 시장은 주식 시장과 달리 각 거래소별로 유동성이 분산된 구조로, 서킷 브레이커 발동 시 해외 거래소와 가격 괴리 발생으로 오히려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음
핵심은 전통 금융 금융의 규제를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라 암호화폐 시장 특성을 이해한 규제가 필요
한국은행은 4월 13일 ‘2025년도 지급결제보고서’ 내에 서킷브레이커 등과 같은 시스템적 장치 도입 검토를 포함했다. 특히, 현재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디지털자산기본법(가칭) 제정 시 이러한 사항을 법령에 반영하여 거래소의 안전성과 투명성을 강화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2026년 2월, 빗썸은 이벤트 당첨금 지급 과정 사고에서 비롯됐다. 당시 담당자 실수로 약 6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오지급했다. 빗썸 발표에 따르면 약 10억원의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왜 지금인가
주식 시장의 서킷브레이커는 특정 지수나 종목이 급락할 때 거래를 일시 정지시키는 제도다. 이를 암호화폐 거래소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빗썸이 거래를 멈춰도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는 멈추지 않는다. 국내 거래소에만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면, 해외에서는 같은 종목의 거래가 그대로 이어진다. 그 사이 가격 괴리가 쌓이고, 거래가 재개되는 순간 그 격차를 노린 차익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전체적인 하락장에서는 문제가 더 커진다. A 코인을 국내 거래소에서만 보유한 투자자는 거래가 멈춘 동안 손을 쓸 수 없다. 같은 시간, 해외 거래소 이용자는 A를 자유롭게 매도하며 손실을 줄인다. 거래가 재개되면 발이 묶였던 국내 투자자의 매도 주문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낙폭은 오히려 더 가팔라진다.
결국 서킷브레이커가 충격을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가중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쉽게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이렇다. 불이 난 건물에서 비상구 하나를 잠갔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당장 그 문으로 몰리는 것을 막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불은 꺼지지 않는다.
잠긴 문 앞에 사람들은 모이고, 다른 비상구에 있던 사람들은 먼저 빠져나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그 피해는 가중된다.
혼잡은 분산된 게 아니라 그 순간에 압축됐을 뿐이다.
국내 거래소에만 적용되는 서킷브레이커가 이와 같다. 거래를 멈춰도 시장의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해외 거래소와 통합된 시장이 아니기에 전통 금융 시장의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
암호화폐 산업의 이해가 필요하다
같은 실수와 피해가 빗썸 사태로 끝난다는 보장은 없다. 사태가 반복된다면, 그 책임은 금융당국 또한 피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에게 암호화폐 시장은 오랫동안 시급한 과제가 아니었다. 시장 특성을 깊이 파악할 유인도 없었고, 관할 부처가 여럿으로 나뉜 탓에 제도를 정비하려 해도 방향이 흐려졌다. 참고할 만한 해외 사례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손에 익은 전통 금융 규제를 그대로 가져오는 방식으로 귀결됐다.
한국은행의 서킷브레이커 권고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빗썸의 내부통제가 미흡했다는 진단은 타당하다. 문제는 후속 처방이 암호화폐 시장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킷브레이커가 국내 거래소에 발동되면 국내 거래는 멈추지만, 해외 거래소는 계속 움직인다. 그 사이 가격 괴리가 쌓이고, 거래가 재개되는 순간 차익거래 압력이 한꺼번에 터진다. 막으려 했던 급락이 해제 시점에 더 압축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피해를 줄이려는 조치가 오히려 다음 피해의 방아쇠가 되는 구조다.
서킷브레이커 권고 하나로 말꼬리를 잡자는 것이 아니다.
당국도 마땅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해한다. 암호화폐 거래 환경은 역사에 없던 거래 환경이다. 24시간 운영되는 글로벌 분산 시장에 맞는 제도 설계는 아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레퍼런스가 없는 상황에서 익숙한 도구를 꺼내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 곧 올바른 선택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사후 대응을 고려하기 보다는 사전 통제를 논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후 대응은 결국 모든 거래소가 동일하게 적용해야 효과가 있는 환경이기에 사전 통제를 통해 최소한 빗썸 사태와 같은 사고를 막아야한다.
따라서 거래소의 내부통제 기준, 고객 자산 분리 보관, 실시간 리스크 모니터링 의무화가 서킷브레이커보다 먼저 논의돼야 할 주제다.
불이 난 뒤 문을 잠그는 것보다, 불이 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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