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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마켓메이커, 암호화폐 마켓메이커, 가짜를 걸러내야 진짜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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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마켓메이커, 암호화폐 마켓메이커, 가짜를 걸러내야 진짜가 남는다

Key takeaways

  • 마켓메이커에 대한 불신은 마켓메이커를 사칭한 시세조종 업체에서 비롯됐다. 명확한 자격 요건이 없어 이름이 무분별하게 쓰였다.

  • 정상적인 마켓메이커는 스프레드를 좁히고 상시 거래 상대가 되어 투자자의 거래 비용을 낮춘다. 프로젝트는 독립된 마켓메이커에 맡겨 시세 개입 의심을 피한다.

  • 암호화폐 마켓메이커는 전통 금융과 같은 일을 하지만, 거래소와 공식 계약을 맺을 제도가 없고 발행사와의 계약은 공개되지 않으며 시장이 파편화된 환경에서 활동한다. 자기 자금으로 매매하는 것 자체는 이미 합법이고, 제도 공백은 계약 쪽에 있다.

  •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이 해법을 담을 첫 기회다. 다만 발의안은 거래소가 맡긴 시장 조성을 허용하지만, 토큰 발행사가 맡긴 계약은 상장 후 6개월까지만 인정한다. 문제가 주로 생기는 발행사 계약까지 제도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


1. 암호화폐 시장에서 마켓메이커는 왜 ‘세력’으로 인식됐나

암호화폐 시장을 경험한 투자자라면 누구나 익숙한 상황이 존재한다. 상장 직후 급등세를 보이던 가격이 급락하고, 풍부하던 거래량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현상이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이러한 가격 변동의 배후로 시장조성자(Market Maker, MM)를 얘기한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마켓메이커를 빙자한 시세 조종 업체들에 의해서 비롯되었다. 이와 같은 업체들로 인해 암호화폐 시장에서 마켓메이커는 시세 조종 세력으로 그 의미가 변질되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로 인한 투자자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 FBI는 ‘서비스형 시세조종’을 벌인 업체를 기소했고, 대한민국에서도 유동성 공급을 내세워 거래량을 조작한 일당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대가를 받고 물량을 떠넘기는 불법 업체일 뿐, 본래 역할을 수행하는 마켓메이커가 아니다. 명확한 자격 요건이 없다 보니 마켓메이커라는 이름이 무분별하게 쓰였고, 결과적으로 업계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이 같은 시세조종 행위는 시장의 신뢰를 깰 뿐, 유동성을 공급해야 할 마켓메이커의 진짜 역할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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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장에 마켓메이커가 필요한 이유

마켓메이커는 매도와 매수 호가를 한 번에 제시하여 유동성을 공급하고 거래를 진행하게 하는 주요 참여자다. 이들이 왜 필요한지 앞서 역할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는 ‘마켓메이커’와 함께 ‘유동성 공급자(Liquidity Provider, LP)’라는 말이 널리 쓰인다.

넓게 보면 유동성 공급은 특정 자격을 가진 회사만 하는 일이 아니다. 즉시 체결되지 않고 호가창에 남아 상대를 기다리는 주문(메이커 주문)은 모두 다른 투자자에게 거래 상대를 만들어 준다. 그래서 메이커 주문을 내는 참여자는 누구나 넓은 의미의 유동성 공급을 하고 있는 셈이다. Jump Trading 같은 고빈도매매(HFT) 회사가 자기 자금으로 매매하며 호가창을 채우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공항 환전 창구가 언제든 환전을 보장하듯, 마켓메이커가 있는 시장에서는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이 서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이 혜택은 투자자와 토큰 발행사 모두에게 돌아간다.

2.1. 투자자가 얻는 것: 거래 비용 감소

투자자의 실제 손익을 가르는 것은 수수료만이 아니다. 원하는 가격에 즉시 체결되는지, 대규모 거래에도 가격이 출렁이지 않는지, 거래소 간 가격 차이가 없는지와 같은 ‘숨은 비용’이 더 중요하다.

마켓메이커가 하는 일은 결국 이 세 가지 조건을 채우는 것이다. 매수와 매도 양쪽에 호가를 촘촘히 걸어 두고, 거래 상대가 없는 순간에도 반대편에 서며, 거래소 사이에 벌어진 가격을 맞춘다. 그 결과 투자자는 더 적은 비용으로, 원할 때, 비슷한 가격에 거래할 수 있다.

  • 거래 비용 감소: 매수·매도 가격 차이(스프레드) 축소, 큰 주문의 추가 비용 감소

  • 원할 때 거래: 사고팔 상대방 상시 확보

  • 거래소 간 가격 차이 축소: 여러 거래소에 동시 호가, 차익거래로 가격 수렴

첫째, 거래 비용이 줄어든다.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의 차이(스프레드)도 비용이다. 지금 바로 살 수 있는 가격이 1,010원이고 바로 팔 수 있는 가격이 990원이라면, 사자마자 되팔기만 해도 2%를 잃는다. 주문이 크면 손해는 더 커진다. 첫 가격에 걸린 물량을 다 사고 나면 다음 가격, 그다음 가격으로 넘어가며 점점 비싸게 사야 하기 때문이다. 마켓메이커가 가격을 촘촘히 걸어 두면 이 차이가 좁아지고, 가격대마다 걸린 물량도 많아진다. 그만큼 거래할 때 보는 손해가 줄어든다.

둘째, 원할 때 사고팔 수 있다.

투자에서는 원하는 순간에 들어가고 빠져나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거래가 뜸한 토큰은 팔고 싶어도 사 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 사이 가격은 계속 움직인다. 마켓메이커는 평상시 늘 호가를 걸어 두고 거래 상대가 되어 준다. 그래서 거래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시간에도 팔려는 투자자는 바로 받아 줄 상대를 찾고, 사려는 투자자는 기다리지 않고 살 수 있다.

2.2. 토큰 발행사가 얻는 것

토큰 발행사에게 상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상장 뒤에도 토큰이 꾸준히 거래돼야 사용자와 투자자가 드나들고, 토큰도 제값을 인정받는다. 마켓메이커는 이 시장을 대신 유지해 준다. 토큰 발행사는 마켓메이커를 통해 두 가지를 얻는다.

  • 꾸준히 거래되게: 작은 주문에도 가격이 크게 흔들리는 현상 완화

  • 시세 개입 의심 차단: 호가 관리는 독립된 마켓메이커가 맡고 토큰 발행사는 물량만 대여

첫째, 토큰이 꾸준히 거래되는 시장을 얻는다. 상장한 토큰은 시장에서 매일 평가받는다. 사용자는 서비스를 쓰려고 토큰을 사고, 투자자는 가능성을 보고 사고판다. 이들이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어야 토큰이 제값을 인정받는다. 거래가 뜸한 토큰은 작은 주문에도 가격이 크게 흔들리고, 이런 변동은 토큰 발행사의 실제 성과와 상관없이 불안을 키우고 평판을 깎는다.

둘째, 시세에 개입한다는 의심을 피할 수 있다. 토큰 발행사가 자기 토큰을 직접 사고팔면 시세에 손을 댄다는 의심을 받기 쉽다. 그래서 거래는 독립된 마켓메이커에게 맡기고 토큰 발행사는 물량만 빌려준다. 정상적인 계약이라면 시세 조종을 막는 조항도 함께 들어간다.

정리하자면, 투자자는 부담하는 매매 비용을 대폭 줄이면서 적시에 매매를 체결할 수 있고, 토큰 발행사는 자산이 안정적으로 유통되는 매매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여기서 마켓메이커가 수취하는 매수·매도 차액은 즉각적인 거래를 희망하는 시장 참여자가 부담하는 일종의 서비스 대가이다. 시장 내 자율 경쟁을 거쳐 이러한 거래 비용이 점차 절감될 때 비로소 생태계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된다.

3. 암호화폐 마켓메이커는 무엇이 다른가?

암호화폐 마켓메이커가 하는 일은 전통 금융의 마켓메이커와 다르지 않다. 다만, 차이점은 활동하는 시장 및 국가의 규율이다. 주식시장 마켓메이커는 거래소와 공식 계약을 맺고 다듬어진 제도 아래서 일한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에는 마켓메이커와 거래소·발행사 사이의 계약을 다룰 제도가 아직 없다.

3.1. 누가 하는가?: 전통은 인가받은 금융기관, 암호화폐는 계약 자격 요건 없음

전통 금융에서 마켓메이커는 법으로 뚜렷하게 정해진 공식적인 역할이다. 심사를 통과한 금융기관이 거래소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약속한 대로 호가를 제출하는 대신 수수료를 깎아주는 혜택을 받는다. 거래소는 누가 어느 종목의 마켓메이커인지 투명하게 공개하며, 어디까지가 ‘정상적인 시장 조성’인지도 오랜 법과 판례를 통해 명확한 기준이 잡혀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마켓메이커가 하는 일은 똑같지만, 마켓메이커가 거래소와 공식 계약을 맺고 의무와 보상을 주고받는 ‘틀’이 사실상 없다.

두 시장의 결정적인 차이는 크게 두 가지다.

  • 첫째, 계약에 관한 규칙의 부재다. 무엇이 정상적인 시장 조성인지, 누가 거래소와 계약을 맺는 마켓메이커가 될 수 있는지, 어떤 의무를 지고 어떤 보상을 받는지에 대한 정해진 틀이 없다.

  • 둘째, 암호화폐 시장 특유의 구조적 위험이다. 거래소가 직접 마켓메이커 역할을 꿰차거나, 마켓메이커가 코인 발행사와 직접 남몰래 비밀 계약을 맺는 기형적인 구조가 흔하게 나타난다. 사태가 이러니 세계 주요 금융 당국들도 완전히 새로운 제도를 뚝딱 만들기보다는, 우선 거래소가 마켓메이커를 함께 운영하지 못하게 막고 비밀 계약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등 급한 불을 끄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한민국 시장 역시 같은 숙제를 안고 있다. 거래소가 직접 마켓메이커 역할을 하는 것은 엄격하게 막고 있지만, 정작 무엇이 올바른 시장 조성인지 판단할 기준이나 공식적인 절차가 비어 있는 상태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규칙이 비어 있는 곳은 마켓메이커가 거래소나 증권사와 맺는 공식 계약이다. 라이선스가 필요한 지점도 이 계약이다. 자기 자금으로 호가를 걸고 매매하는 행위 자체는 라이선스와 상관없이 이미 합법적인 활동이다. EU MiCA도 거래소 안에서 자기 자금으로 하는 시장 조성에는 라이선스를 요구하지 않고, 고객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할 때만 요건을 둔다.

3.2. 누구와 어떤 계약을 맺는가?: 전통은 거래소와, 암호화폐는 거래소와 토큰 발행사

암호화폐 마켓메이킹과 전통 금융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토큰 발행사와 위탁 계약이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중 ‘계약 없는 자기자본형’은 성격이 다르다. 누구와도 계약을 맺지 않고 대가도 받지 않는다. 자기 자금으로 자기 전략에 따라 매매하고, 유동성은 그 결과로 생긴다. 앞서 본 넓은 의미의 유동성 공급에 해당하며, 라이선스와 닿는 지점이 없는 이미 합법적인 활동이다. 토큰 대여형도 매매 판단과 가격 위험을 마켓메이커가 직접 지고 발행사가 개별 거래를 지시하지 않는다면, 본질은 자기자본 매매와 같다.

문제가 생기는 곳은 발행사 계약 중에서도 성과를 거래량으로 재는 계약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러한 계약은 자금 출처나 위험 부담 주체 등에서 거래소 주도 계약과 차이를 보이며, 스프레드 설정부터 상장 및 락업 해제 시점의 대응 전략까지 광범위하게 다룬다. 그러나 거래량 창출을 주요 성과 지표로 삼는 계약 구조는 자전거래 등 가장매매를 유발할 위험이 높고, 계약 내용이 외부에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 주요 한계로 꼽힌다.

3.3. 어떤 시장에서 거래하는가: 전통 금융은 단일 시장, 암호화폐는 파편화된 시장

주식은 정해진 시간에 한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거래소와 청산소가 가격 급변과 결제 위험을 막아 준다. 암호화폐는 24시간 전 세계 거래소로 파편화돼 있고, 이 위험을 막아 줄 장치도 없다. 이러한 파편화된 유동성 공급은 마켓메이커에게 위험 요인이다.

먼저, 24시간 연중무휴로 돌아가는 암호화폐 시장은 전 세계 수많은 거래소로 쪼개져 있어 잦은 가격 불균형을 낳는다. 마켓메이커는 여러 거래소에 자산을 흩어두고 이를 바로잡지만, 입출금 차단 등 네트워크 장애가 발생하면 이러한 시장 조정 기능은 순식간에 마비된다.

위험을 방어(헤지)할 수단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서킷브레이커 같은 안전장치가 없고 고배율 선물 거래가 난무하는 탓에, 마켓메이커는 현물과 반대되는 선물 포지션을 잡아 가격 변동에 대비한다.

2025년 10월 하루 190억 달러 규모의 연쇄 청산 사태 때 드러났듯, 거래소의 자동 부채 감축(ADL) 시스템이 작동하면 마켓메이커의 정상적인 헤지 포지션마저 강제로 종료되는 일이 벌어진다. 최소한의 방어막마저 잃은 이들이 다급히 호가를 거두어들이면서 시장의 충격과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중앙청산소(CCP)가 없는 결제 구조에 있다. 거래와 결제를 보증하는 전통 금융 체계와 달리, 암호화폐 마켓메이커는 각 거래소에 직접 자산을 예치한 채 거래해야 한다. 이 때문에 2022년 FTX 파산처럼 예치해 둔 거래소 자체가 무너지면, 마켓메이커는 자산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전액 손실을 떠안는 치명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4. 현재 마켓메이커 산업의 다섯 가지 한계점

원활한 자산 거래를 위해 마켓메이커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무분별한 시장 조성 행위를 방치하면 도리어 시장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 지금은 암호화폐 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실질적인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이어지는 장에서 살펴볼 다섯 가지 한계는 마켓메이커라는 기능 자체의 결함이 아니다. 이는 정상적인 유동성 공급과 불법적인 시세조종을 가려낼 명확한 기준이나 감시 체계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다. 결국 현재 암호화폐 마켓메이커는 시장에서 제대로 된 기준을 세워야 한다.

4.1. 정상적인 위험 관리가 시세조종으로 오해받는다

마켓메이커의 정상적인 위험 관리 행위는 외부 시선에서 시장 교란이나 시세조종으로 오해받기 쉽다. 현업 관계자들은 오해를 사기 쉬운 대표적인 위험 관리 행위로 다음 네 가지를 제시했다.

무엇이 정상인지 정해 두지 않으면 이런 오해는 제도가 갖춰진 시장에서도 생긴다.

대표적 사례가 한국 주식시장이다. 2021년 금융감독원이 9개 증권사 시장조성자의 잦은 호가 정정·취소를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판단해 487억 원의 과징금을 통지하자 시장조성이 즉시 중단됐다. 약 1년 뒤인 2022년 7월, 증권선물위원회는 의무 이행과 위험 관리를 위한 정정·취소가 불가피하고, 정정·취소율(95.68~99.55%) 역시 뉴욕증권거래소(약 94.6%)와 유사하며 사전 기준도 없었다는 점을 들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불법은 아니었으나, 결론이 나오기까지 시장은 1년간 마켓메이커 없이 운영됐다.

암호화폐 시장은 명확한 기준이 없어 동일한 거래를 두고 유동성 공급과 시세 조종이라는 주장이 법정에서 대립한다. 정상적인 마켓메이커조차 거래의 위법 여부를 예측할 수 없어 시장을 이탈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해결책은 정상적 행위의 기준을 사전에 확립하는 것이다. 단순 취소 빈도가 아닌 체결 의사 유무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하며, 이는 2010년 플래시 크래시 당시 미국이 극단적 가격의 호가만 금지했던 방식과 일치한다. 현업에서도 계약 및 위험 관리 규정 준수, 실질적 가격 위험 감소, 양방향 호가에 기반한 목적성 여부 등을 핵심 기준으로 본다.

  • 사전에 정한 계약과 내부 위험 관리 규정 안에서 실행됐는가

  • 그 행위로 마켓메이커의 가격 위험이 실제로 줄었는가

  • 가격을 한쪽으로 끌고 가려는 목적 없이 양방향 호가를 바탕으로 이뤄졌는가

예를 들어 시장이 급변할 때 현물을 팔면서 같은 수량의 선물을 샀다면, 겉으로는 매도 공세처럼 보여도 전체 포지션의 위험을 상쇄하는 정상적인 헤지다. 반면 헤지 없이 현물을 대량으로 팔면서 악재성 소문을 퍼뜨리는 행위는 위험 관리로 보기 어렵다. 이런 기준을 감독당국과 거래소가 미리 공표하면, 정상 공급자는 법적 불확실성 없이 일할 수 있고 불법 행위는 더 분명하게 걸러진다.

기준이 없을 때 생기는 문제는 정상 업체가 의심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반대로 마켓메이커가 아닌 업체가 마켓메이커 행세를 하기도 쉬워진다.

4.2. 마켓메이커 간판을 단 거래량 조작 업체가 섞인다

앞서 다룬 것이 정상적인 마켓메이커가 의심받는 문제라면, 반대로 마켓메이커가 아닌 업체가 마켓메이커로 행세하는 문제도 있다. 시장이 ‘마켓메이커의 잘못’으로 기억하는 사건 상당수는 이 이름을 빌려 전혀 다른 사업을 한 경우다.

Gotbit이 대표적이다. 미국 검찰에 따르면 Gotbit은 2018~2024년 여러 계정끼리 사고팔기를 반복하는 프로그램으로 거래량을 부풀리는 서비스를 팔았다. 목적은 고객 토큰의 암호화폐 마켓캡 순위를 끌어올리고 대형 거래소에 상장시키는 것이었다. 창업자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고, 회사는 약 2,300만 달러어치 암호화폐을 몰수당했다.

현업 마켓메이커는 이들의 사업 모델이 애초에 가격 위험을 지지 않고 가짜 거래량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짚었다. 거래량만 보는 시장에서는 이런 업체가 오히려 성과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켓메이커를 평가하는 기준을 거래량에서 실제로 거래할 수 있는지로 바꿔야 한다. 거래량은 자전거래로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업 마켓메이커는 거래량을 결과로만 참고하고, 대신 다음을 본다.

  • 현재 가격에서 1~2% 안에 걸린 주문이 얼마나 두꺼운가

  • 일정 금액을 거래할 때 가격이 얼마나 밀리는가

  • 매수·매도 호가를 동시에 걸어 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거래량이 아무리 풍부해 보이더라도 호가창이 얇아 사소한 주문에 시세가 크게 흔들린다면 실질적인 유동성이 부재한 상태다. 결국 핵심적인 판가름 기준은 외부 참여자가 희망 수량을 적정 시세에 원활히 체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거래소와 발행 주체가 이 같은 본질적 평가 요소를 바탕으로 시장조성자를 엄선할 때, 불법 시세조종만을 목적으로 하는 허위 업체들은 시장에서 점차 퇴출될 것이다.

등록이나 인가는 거래소·발행사와 계약을 맺고 마켓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파는 업체에 요구하면 된다. Gotbit처럼 발행사에게 돈을 받고 서비스를 판 업체는 계약 단계에 요건을 두면 처음부터 걸러낼 수 있다. 자기 자금으로 매매하는 참여자까지 인가로 묶을 필요는 없다. 3장에서 본 대로 EU MiCA도 같은 방식으로, 거래소 안에서 자기 자금으로 하는 시장 조성이 아니라 고객 대상 서비스에만 라이선스를 요구한다.

4.3. 계약 주체가 가려진 기형적인 이해관계

역량 있는 업체를 선정하더라도, 누가 누구와 계약을 맺었는지 그 구조가 불투명하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토큰 발행사와 마켓메이커 간의 계약 주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거래의 상대방이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한 업체가 거래 양쪽의 대리인을 동시에 맡는 등 상식 밖의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MOVE 사례가 그렇다. Movement 재단은 Web3Port의 자회사를 자처한 중개업체 Rentech에 공급량의 5%인 6,600만 개 토큰을 넘기고 유동성 공급을 맡겼다. 그런데 Rentech은 계약서에 한 번은 재단의 대리인으로, 한 번은 Web3Port 측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거래 양쪽에 같은 업체가 서 있었던 셈이다.

이 물량은 2024년 12월 상장 직후 매수 호가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장에 쏟아졌다. 바이낸스는 해당 마켓메이커를 퇴출하고 수익 3,800만 달러를 동결했다. 코인베이스는 이후 MOVE 거래를 중단했다. 재단은 이 매도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름은 유동성 공급 계약이었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양방향 호가가 아니라 토큰 발행사 물량의 일방적인 처분이었다.

따라서 올바른 시장 조성의 핵심은 공정한 계약 조건과 투명한 계약 관계에 있다.

우선 내용적인 면부터 보자.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마켓메이커들의 계약에는 확고한 두 가지 원칙이 있다. 마켓메이커가 실질적인 가격 위험을 짊어지고, 토큰 발행사는 시세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큰 대여 방식이라면 마켓메이커는 대여받은 토큰과 자체 자금으로 양방향 호가를 제공한다. 이후 계약이 종료되면 동일한 수량을 반환할 뿐, 그동안 가격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달라는 지시는 전혀 받지 않는다. 이를 위해 계약서에는 다음 사항들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 자전거래 금지

  • 특정 방향으로 시세를 끌고 가는 행위 금지

  • 매수·매도 가격 차이의 상한

  • 최소 호가 물량

콜옵션 계약이라도 마켓메이커가 일상적인 호가를 스스로 정하고, 토큰 발행사가 옵션 조건만 정할 뿐 개별 거래를 지시하지 않는다면 같은 원칙이 지켜진다.

다음은 계약을 보이게 하는 일이다. 최소한 거래소와 감독당국은 어떤 마켓메이커가 어떤 물량과 조건으로 들어와 있는지, 중개인이 양쪽을 동시에 대리하지 않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바이낸스가 2026년 3월부터 상장 토큰 발행사에 요구하는 정보가 바로 이것이다. 나아가 주식시장에서 거래소가 종목별 시장조성자를 공개하듯, 투자자도 어떤 마켓메이커가 들어와 있는지는 알 수 있어야 한다.

4.4. 거래소와 마켓메이커가 한 지붕 아래 있다

마켓메이커가 거래소의 계열사라면 이해상충은 더 커진다. 한 회사가 거래소, 수탁, 자기매매를 함께 운영하면 계열 마켓메이커는 다른 이용자에게 없는 특혜를 받기 쉽다.

FTX와 알라메다 리서치가 대표적이다. 알라메다는 FTX의 주요 마켓메이커로 활동하며 다른 이용자에게 없는 신용 한도와 특혜를 받았다. 미국 당국은 FTX 고객 예치금이 알라메다로 흘러가 투자와 손실을 메우는 데 쓰였다고 판단했다. 두 회사는 2022년에 함께 파산했다. 문제는 마켓메이커라는 지위 자체가 아니었다. 그 지위에 딸린 신용과 재량이 아무런 감시 없이 고객 자산을 유용하는 데 쓰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해법은 계열 마켓메이커를 무조건 막는 것이 아니라, 조직을 분리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국제증권관리위원회(IOSCO)가 2023년 권고안에서 이 이해상충을 핵심 과제로 꼽은 뒤, 홍콩이 이를 제도로 옮겼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는 2026년 2월 거래소 계열사의 시장 조성을 허용하면서 세 가지 조건을 달았다.

  • 시장조성 조직을 거래소와 기능적으로 분리할 것

  • 둘 사이의 운영 경계를 분명히 둘 것

  • 시장조성을 시작하기 전에 독립 전문기관의 점검 보고서를 당국에 낼 것

특혜와 정보 공유가 생기지 않도록 선을 긋고 감시하는 방식이다. 국내 거래소가 계열사나 관계사를 통해 시장 조성을 하게 된다면 같은 원칙을 처음부터 적용해야 한다.

4.5. 의무가 없는 마켓메이커는 위기 때 먼저 빠진다

이전 4가지 사례가 일상적 상황의 한계라면, 마지막 항목은 시장이 극단적으로 하락하는 시장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대다수의 암호화폐 마켓메이커는 하락 시장에서 지켜야 하는 강제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 손실이 누적될 경우 호가를 회수하는 판단이 이성적 대응으로 작용하며, 이로 인해 주문 공백이 발생해 시장이 급격히 붕괴된다. 앞서 살핀 2025년 10월 10일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다수의 암호화폐가 40~70% 급락했는데, 현업 관계자들은 마켓메이커의 호가 철회가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위기 상황 속 이탈을 방지하려면 명확한 이행 의무와 적절한 인센티브 구조가 동반되어야 한다. 실제로 강제 규범을 따르는 주체들은 위기 속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현업 관계자 인터뷰에 따르면 거시경제 악재로 급락했던 특정 암호화폐의 경우, 마켓메이커가 매수·매도 스프레드를 한시적으로 넓히면서도 호가 배치를 유지해 거래 단절을 방지했다. 이러한 차이는 계약 구조상의 의무 준수와 위험 관리 지침에서 비롯됐다.

전통 주식시장은 이러한 장치를 제도화했다. 한국거래소는 시장조성자에게 대상 종목별로 일일 80%, 분기 90% 이상의 호가 제출 의무를 부여하며, 이를 준수한 주체에게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의무 미이행 시 벌점이 부과되고, 일정 수준을 초과하면 위탁 계약 해지와 함께 1년간 자격이 박탈된다.

의무를 지켰는지 재는 잣대도 필요하다. 현업 마켓메이커는 시장 충격 뒤의 회복을 가격 반등이 아니라 거래 기능이 돌아왔는지로 판단한다.

  • 벌어진 매수·매도 가격 차이가 다시 좁아지는가

  • 빠졌던 호가 물량이 다시 채워지는가

  • 거래소 사이의 가격 차이가 수렴하는가

  •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이 지표를 의무 기준으로 삼고 그만큼 보상하면, 마켓메이커는 위기 때 떠날 이유보다 남을 이유를 더 갖게 된다.

5. 단속의 대상에서 관리의 대상으로

국내에서 마켓메이커에 대한 불신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4장에서 본 것처럼 그 근거를 따라가 보면 문제는 마켓메이커라는 기능에 있지 않았다. 누구나 마켓메이커를 자처할 수 있고, 무엇이 정상인지 아무도 정하지 않은 구조였다.

국내 법은 아직 이 구조를 그대로 두고 있다. 다만 공백이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짚어야 한다. 자기 자금으로 매매하며 호가를 채우는 활동은 지금도 합법이다. 토큰을 빌려 운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활동도 다른 모든 매매처럼 시세조종에 해당하면 처벌받지만, 자기자본 매매라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회색 지대는 그 바깥, 계약 쪽에 있다.

  • 거래소와 공식 계약을 맺을 통로가 없다. 현행 암호화폐 이용자 보호법은 시세조종을 금지하면서 시장조성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래서 거래소가 마켓메이커와 호가 의무 계약을 맺으면, 그 계약에 따른 매매가 시세조종으로 다뤄질 위험이 있다.

  • 계약형 마켓메이커를 위한 라이선스나 등록 제도가 없다.

  • 법인이 국내 원화 거래소에서 계좌를 열고 매매하기 어렵다.

결국 국내에서 제도 밖에 있는 것은 유동성 공급 활동 자체가 아니라, 이를 공식 계약으로 맡기고 관리하는 통로다. 계약형 마켓메이커는 제도 안에서 관리받을 길이 없고, 사후 단속만 남아 있다. 주요국은 이미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불공정거래 규율은 전통 금융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 안에서 시장 참여자가 일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방식이다.

  • EU: MiCA를 전면 시행한 2024년 12월 30일부터 암호화폐 시세조종을 금지했다. 거래소 안에서 자기 자금으로 하는 시장 조성은 라이선스 대상이 아니다. 라이선스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점에 붙는다. 키록과 플로우데스크 같은 대형 마켓메이커가 2026년 6월 라이선스를 받은 것도 고객 대상 서비스를 위해서였다.

  • 홍콩: 거래소 유동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2026년 2월 거래소 계열사의 시장 조성을 허용했다. 대신 시장 조성 조직을 거래소와 분리하도록 했다.

  • 일본: 2026년 7월 암호화폐를 금융상품거래법으로 규율하는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내부자거래 금지를 새로 넣었다.

비록 주요국들이 출발한 지점은 상이하나 명확히 동일한 지향점을 바라보고 있다. 불공정 시세조종 행위는 기존 금융권 수준으로 엄정히 규제하되, 건전한 유동성 공급 주체는 제도권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인정하는 방식이다.

국내 시장이 지향해야 할 과제 역시 이러한 균형점의 모색에 있다. 마켓메이커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이나 맹목적인 옹호 모두 바람직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구조적 한계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요구되는 제도적 정비 방향은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1. 정상과 일탈을 가르는 기준을 법에 담는다. 업계가 이미 쓰는 기준에서 출발하면 된다. 마켓메이커가 가격 위험을 직접 지는지, 가격을 한쪽으로 밀려는 목적이 없는지, 외부 투자자가 실제로 사고팔 수 있었는지다. 기준이 미리 있어야 정상적인 위험 관리가 시세 조종으로 오해받지 않는다.

  2. 계약을 맺는 마켓메이커의 자격을 정한다. 등록·인가 요건은 거래소나 발행사와 계약을 맺고 의무를 지는 지점에 둔다. 그러면 마켓메이커 간판을 내건 거래량 조작 업체는 계약 단계에서 걸러지고, 자기 자금으로 하는 넓은 의미의 유동성 공급은 지금처럼 열려 있다.

  3. 계약을 보이게 한다. 어떤 마켓메이커가 어떤 물량과 조건으로 들어와 있는지 최소한 거래소와 감독당국은 알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도 어떤 마켓메이커가 들어와 있는지는 알 수 있어야 한다.

  4. 이해상충을 막는다. 거래소와 같은 그룹 안에서 시장 조성을 한다면, 홍콩처럼 조직을 분리하고 외부 점검을 받게 해야 한다.

  5. 의무와 보상을 함께 준다. 한국거래소 시장조성자 제도처럼 호가 유지 의무를 지우고 그에 맞는 보상을 주면, 위기 때 마켓메이커가 시장에 남을 이유가 생긴다.

따라서 바로 지금이 이러한 법적·제도적 틀을 올바르게 세워야 할 적기다.

  • 2025년 6월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거래소가 위탁한 시장조성을 시세조종에서 제외하는 조항을 담았다.

  • 2026년 9월에는 금융위원회 담당 국장이 공개 석상에서 시장 조성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금융위원장은 2026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법안 내용을 이미 준비해 막바지 협의 중이라고 답했다. 정부는 연내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마켓메이커를 허용할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허용할지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지점이 있다. 지금 공개된 법안은 거래소가 위탁한 시장 조성을 중심으로 한 주식시장 모델이다. 하지만 앞서 본 문제의 상당수는 거래소가 아니라 토큰 발행사와 맺은 계약에서 나왔다. 토큰 발행사 계약을 어떻게 다룰지가 빠지면, 제도 밖의 가장 큰 사각지대가 그대로 남는다.

법인시장 개방도 이 입법과 맞물려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2월 상장사와 전문투자자 약 3,500곳에 암호화폐 매매를 시범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가이드라인을 확정하지 않았고, 발표 시점을 디지털자산기본법과 연계해 검토하고 있다. 법인 자금이 들어올 시장의 규칙을 정하는 지금 마켓메이커를 그 규칙 안에 함께 담지 않으면, 시장이 열린 뒤에도 유동성 공급은 제도 밖에 남게 된다.

국내 암호화폐 시장이 기관 자금을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마켓메이커를 보는 눈부터 바뀌어야 한다. 단속만으로는 정상적인 마켓메이커를 시장에 붙잡아 둘 수 없고, 간판만 빌린 업체를 걸러낼 수도 없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마켓메이커를 단속의 대상에서 관리의 대상으로 옮길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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