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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의 체인,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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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의 체인,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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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화, 한국의 금융 문법

한국의 일상은 원화로 귀결된다. 월급을 받고 세금을 내며, 물건을 사고 투자하는 모든 행위가 원화라는 단위 안에서 움직인다. 국경 없는 금융의 시대라 하지만, 우리 삶의 실질적인 교환 매개는 여전히 원화다.

금융 문법 역시 한국 내에서 움직인다. 금융 활동을 하는 소비자는 체감할 수 없지만 그 뒤에 있는 거래 구조는 모두 논의를 거친 합의된 내용들이다.

자금세탁방지(AML) 기준을 예로 들어보자. 국제적인 권고안은 약 1,000달러를 기준으로 제시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거래를 처리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3,000달러 이상의 거래부터 규제하여 권고보다 유연한 편이다. 반면 한국은 최근 100만 원이라는 하한선마저 삭제하며, 금액과 관계없이 모든 거래에서 송·수신인 정보를 함께 전달하도록 규제 틀을 짰다.

금융 규칙 역시 국제적인 권고안이라는 보편적 지향점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거래의 문법’은 각 국가가 마주한 금융 환경과 제도적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결을 지닌다. 결국 실무적인 적용은 개별 국가의 특수성에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 특수성은 블록체인을 통한 금융 혁신 과정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기술은 국경을 넘나들지만, 그 기술이 실행되는 금융 시스템은 여전히 로컬 규제와 문법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하나의 로컬 금융 문법에 전문성을 갖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 로컬 시장만이 가진 고유한 맥락을 정확히 해석하고 이를 인프라 수준에서 녹여낼 수 있는 주체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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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에서 태어난 마루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응답하며, 한국에서 태어난 체인이 바로 ‘마루(Maroo)’다.

마루는 해시드오픈파이낸스가 주도한다. 해시드오픈파이낸스는 모회사인 해시드의 산하 조직으로,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자산 토큰화, 증권형 토큰 발행 사업화를 위해 설립된 법인이다. 해시드는 2017년 설립된 한국 대표 블록체인 투자사이자 액셀러레이터로, 한국의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본 경험을 살려 해시드 오픈파이낸스를 통해 마루를 만들고 있다.

여기에 기술적 완성도와 운영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샤드랩(ShardLab)과 딜라이트랩스(Delight Labs)가 파트너로 합류했다. 샤드랩은 태국의 금융그룹 SCBX와 협력하며 동남아시아에서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를 직접 설계하고 운영해 온 실무적 경험을 보탠다. 여기에 2018년부터 다수의 노드와 메인넷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온 딜라이트랩스의 체인 운용 노하우가 결합되었다. 한국 시장에 대한 깊은 통찰에 노하우가 더해지며 마루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향후 정부 당국, 금융기관과의 논의를 통해 규제 정합성을 검증하고, 학계 및 스타트업 생태계와 함께 활용 가능성을 넓혀갈 예정이다.

정리하면, 마루를 만드는 세 조직 모두 서울에 실제 팀을 두고 있다. 해시드오픈파이낸스가 국내 규제 사업을 전담할 별도 법인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샤드랩과 딜라이트랩스도 각자 서울 오피스에서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내 기관, 학계와 스타트업이 지원할 예정이다.

결국 마루는 한국 시장만이 가진 고유한 제도적 결을 가장 깊게, 그리고 가장 기민하게 인프라의 본질에 투영해 나갈 것이다.

3. 원화로 움직이는 마루 체인

한국인의 일상은 원화로 움직인다. 월급을 원화로 받고, 그 돈으로 관리비를 내고 장을 보고 적금을 붓는다. 급여부터 세금, 공공요금, 투자까지 실물경제 전체가 이미 원화 단위로 돌아가고, 그중 대부분은 이미 디지털로 처리된다.

그러나 실물 디지털 경제와 기존 블록체인 생태계는 서로 분리되어 작동한다. 온체인 환경 대다수가 달러 중심의 구조로 움직이고 있어, 우리가 매일 체감하는 원화 기반의 일상과는 뚜렷한 거리를 두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루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인 OKRW를 네트워크의 기본 단위로 설정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한국의 일상 화폐 단위를 온체인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비용 구조의 예측 가능성에서 장점을 지닌다. 어떤 네트워크든 혼잡해지면 가스비는 오른다. 마루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가치가 고정되지 않은 자산으로 가스비를 받는 체인에서는 여기에 한 겹이 더 붙는다. 네트워크 사용이 늘면 그 자산에 대한 수요가 함께 늘고, 수요가 자산 가격을 밀어올리면 같은 거래를 하는 데 드는 비용이 두 배로 뛴다. 혼잡도와 자산 가격이 서로를 증폭시키는 구조다.

마루의 기저 자산은 원화다. 사용량이 늘어도 원화 가치가 그 때문에 움직이지는 않는다. 남는 변수는 혼잡도 하나뿐이며, 이는 거래량을 보고 예측할 수 있는 종류의 변수다.

물론 비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트래픽이 몰리면 가스비 부담은 커지고, 여기에 서버 자원이나 가스비 대납처럼 서비스 운영에 따라붙는 원가가 더해진다. 이 원가는 최종 사용자가 아니라 마루 위에서 서비스를 운영하는 쪽이 진다. 예측 가능성이 의미를 갖는 지점도 여기다. 통제할 수 없는 시세가 아니라 자사 거래량이라는 계획 가능한 변수가 원가를 결정한다.

다만 실제 마루를 써야 하는 금융기관이라면 비용 예측 가능성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 원화 자체를 놓고 두 가지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화폐 발행 권한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그리고 비상시 거래 통제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지다.

3.1. 화폐 발행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

현실 세계에서 화폐 발권력이 특정한 주체에게만 부여되듯, 마루의 OKRW 발행 권한 역시 일반적인 실행 권한과 엄격히 격리되어 있다. 이러한 권한 격리는 다음 세 가지 핵심 축으로 설계되었다.

  • 거버넌스 기반의 발행 통제: 발행 권한은 특정 기업의 독단이 아닌, 프로토콜 레벨의 합의 절차와 거버넌스 통제 하에 관리

  • 체인 로직 차원의 발행 구조: 스마트 컨트랙트가 아닌 체인 자체의 프리컴파일 형태로 내장되어, 규칙 변경 시 단순 컨트랙트 교체가 아닌 체인 로직 수정이 필요하도록 보안성 확보

  • 발행과 유통의 기술적 분리: 유통은 ERC-20 표준을 준수하여 호환성을 확보하고, 발행은 별도 시스템 계정을 경유하게 하여 발행량 검증과 수취 기록을 독립적으로 관리

즉, 마루의 발행 구조는 중앙은행의 발권 프로세스가 갖는 엄격함을 블록체인 인프라에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발행 규칙은 프로토콜이 통제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유통은 표준화된 인프라에 맡겨 범용성을 확보한다. 안정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노린 이원 구조다.

3.2. 비상시 거래 통제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지?

비상시 거래 통제 권한은 운영 주체의 상시 개입이 아닌, 법적 근거와 합의된 절차를 갖췄을 때만 사후적으로 활성화된다.

마루는 해킹이나 명백한 불법 자금 흐름과 같이 현실에서 사후 구제가 요구되는 상황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체인 전체를 되돌리는 롤백 대신 사전에 정의된 절차에 따라 제한된 범위에서 상태를 교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현재 자산 동결과 회수, 피해 구제를 위한 재발행 등이 수단으로 검토되고 있으며, 구체적인 작동 상황과 절차는 논의 중이다.

마루가 별도의 메인넷을 구축한 결정적인 이유도 이 맥락에 닿아 있다. 이상 거래에 대응하는 주체와 절차를 한국의 금융 현실에 맞게 정의하려면 네트워크 근간의 규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 국가가 통화 주권을 지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마루는 이 통제권을 프로토콜 차원에서 확보하는 방향을 택했다.

4. 원화가 움직이는 거래의 규칙

독자적인 메인넷과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하드웨어가 갖춰졌다면, 이제 그 위에서 자산이 ‘거래의 규칙’을 설계할 차례다.

현재 국내 금융 환경에서 거래의 규칙은 각 사의 파편화된 개별 서비스의 코드 속에 흩어져 있다. 이러한 파편화의 비용은 규제가 변화할 때 고스란히 드러난다. 트래블룰 하한선 같은 기준이 단 1원이라도 조정되면, 수많은 사업자가 저마다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재배포하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감독기관 또한 개별 서비스의 정합성을 일일이 대조하며 막대한 행정력을 소모한다. 규제 대응이 하나의 핵심 업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마루는 이 규칙의 위치를 서비스단에서 인프라단으로 옮긴다. 개별 앱의 로직이 아닌 체인 레벨의 본질에 규제를 직접 각인하는 방식이다. 제도적 한도가 바뀌면 체인 내 파라미터를 갱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네트워크 위의 모든 서비스가 동시에 새로운 금융 문법을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 원화 거래가 온체인에서 처리되는 흐름을 살펴보자. 규제 파라미터가 체인에 투영되고, 거래 적합성을 엔진이 판별하며, 기록이 권한 수준에 따라 확인된다.

4.1. 규제는 어떻게 반영되는가

마루는 공통된 참조 규칙인 ‘법률 오라클(Legal Oracle)’을 제시한다. 규제 주체가 직접 거래 한도 등 실무적인 규제 데이터를 설정해 모두가 기준으로 삼는 시스템의 근간인 것이다.

데이터 갱신은 규제 설계 및 집행 기관인 감독당국과 금융기관, 법률기관이 참여하는 오라클 위원회(Oracle Committee)를 통해 이뤄진다. 이 구조는 제도 설계 주체가 네트워크 규칙을 원장에 직관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한다.

설계의 핵심은 단일 기관의 독단적인 파라미터 변경을 차단하는 데 있다. 반드시 정해진 정족수의 승인을 거쳐야 변경 사항이 반영되며, 모든 이력은 투명하게 기록된다.

이렇게 공급된 데이터는 프로그래머블 규제 준수 계층(PCL)을 통해 실시간 거래에 적용된다. PCL은 규칙을 직접 만들기보다 규칙을 조립하는 틀을 제공한다. 송금 차단이나 한도 설정과 같은 개별 조건을 하나의 블록으로 만들고, 이를 AND와 OR 논리로 엮어 복합적인 정책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마루는 여러 템플릿을 가이드로 제공하여, 실무자가 코드를 새로 짜는 수고 없이 필요한 값만 채워 넣는 것만으로 효율적인 규제 설계를 가능하게 했다.

각 블록에 들어갈 값은 오라클이 공급하므로, 규제 환경이 변해도 코드 수정이나 하드포크 없이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트래블룰 대응을 예로 들면, 오라클에서 인증 연동 기간 한도 템플릿에 법정 기준 금액과 24시간이라는 초기화 주기를 입력하는 것으로 끝난다. 인증을 마친 사용자는 이 한도 계산에서 제외되고, 미인증 사용자는 기준 금액을 넘는 순간 거래가 거부된다. 법이 정한 금액이 바뀌면 값 하나만 갱신하면 되는 것이다.

4.2. 규칙은 언제 어떻게 걸리는가

규제 검증의 핵심은 타이밍이다. 마루의 모든 트랜잭션은 실행 전 PCL(프로그래머블 규제 준수 계층) 필터를 거친다. 사전 정책을 위반한 거래는 멤풀(Mempool) 단계에서 차단된다. 이는 사후 추적 방식이 아닌, 거래 성립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인프라 대응이다. 거래 거부 시 구조화된 사유 코드를 반환하여 운영자와 사용자에게 규제 준수 실패 원인을 명확히 전달한다.

검증 체계는 적용 범위에 따라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네트워크 전체에 적용되는 ‘글로벌 정책’이다. 제재 대상 필터링, 미인증 계정 한도 제한 등 모든 주체가 준수할 공통 문법이다. 다음은 개별 컨트랙트 단위의 ‘특정 정책’이다. 토큰증권(STO)과 같이 자산 특수성이 필요한 경우 컨트랙트 소유자가 직접 검증 로직을 결합한다. 두 검증은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거래는 블록체인에 기록될 수 없다.

거래 성격에 맞춘 ‘듀얼 트랙’ 경로도 도입했다. 소액 송금과 기관 단위 정산은 검증 요구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개방 경로(Open Path)는 네트워크 공통 정책만 적용받는다. 제재 대상 여부처럼 모든 거래가 예외 없이 통과해야 하는 조건이다. 사전 승인 없이 즉시 전송되되, 개방 흐름으로 태깅되어 상시 모니터링 대상이 된다.

규제 경로(Regulated Path)는 여기에 컨트랙트 단위 정책이 더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조건을 정하는 주체다. 체인이 일률적으로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운영하는 앱이 자신에게 적용될 검증 기준을 직접 정의한다. 어떤 인증을 요구할지, 한도를 얼마로 둘지를 해당 사업자가 자기 규제 환경에 맞춰 조립하는 구조다. 실행 전에 이 조건을 통과해 승인 증명을 획득해야 거래가 성립한다.

결국 두 경로의 차이는 거쳐야 하는 검증 단계의 수에 있다. 개방 경로는 공통 문법만 적용받는 반면, 규제 경로는 여기에 사업자가 설정한 자체 기준을 추가로 거치는 것이다.

이러한 트랙 구분 체계는 금융기관에 실무적 가치를 제공한다. 은행은 내부 지침에 따라 규제 경로 거래만 공식 정산 기록으로 인정할 수 있다. 개방 경로에서 부적절한 거래가 감지되면 마루의 분석 인프라와 연계해 신속한 사후 추적이 가능하고, 그 결과를 근거로 자산 회수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4.3. 그 기록은 누가 볼 수 있는가

기업의 정산 내역이 경쟁사에 노출되고 개인의 소비 이력이 누구에게나 공개된다면, 온체인 전환이 어렵다. 금융 데이터의 기밀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데이터를 전면 비공개로 전환할 수도 없다. 앞에서 다룬 검증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거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감독 기관 역시 필요시 이를 점검할 수 있었다. 핵심은 정보의 완전한 공개나 차단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접근을 허용할 것인가’이다.

마루는 권한에 따른 차등 접근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일반 사용자는 본인의 거래 내역을, 당사자들은 상호 주고받은 기록을 확인했다. 운영자와 규제 기관은 각자의 역할과 책임 범위에 맞춰 정보 접근 권한을 부여받는 구조였다.

기술적으로는 영지식 증명(ZKP) 기반의 차폐 풀(Shielded Pool)을 적용했다. 이는 거래 전체를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데이터 필드만 선택적으로 가리는 방식이다. 사용자는 암호화된 기록과 증명값을 통해 거래 금액이나 수취인을 밝히지 않고도 정당한 소유권과 이중지불 방지를 입증할 수 있었다. 즉, 거래의 성립 여부는 네트워크가 검증하되 세부 내용은 당사자 간에만 공유되며, 원한다면 선택적으로 전체 공개도 가능하다.

기관의 열람 권한은 별도의 절차를 거쳤다. 사전 합의된 법적·거버넌스 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해 감사키(Auditor Key)를 통해 승인된 범위 내에서 데이터를 복호화했다. 비공개 거래라 할지라도 감독의 사각지대에 남지 않으며, 열람 이력과 근거 역시 기록으로 투명하게 남게끔 강제한

이 모델은 현재 개념 검증(PoC) 단계에 있다. 차등 열람 구조가 사용자 경험을 저해하지 않는지, 기관의 권한 통제 절차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프라이버시 보호 모드와 규제 준수 계층이 상충 없이 맞물리는지를 면밀히 검증하고 있어 추후에 상세한 기술은 바뀔 수 있다.

5. 사람이 아닌 주체가 거래할 때

지금껏 우리가 사용해 온 금융의 규칙은 언제나 ‘인간’을 기점으로 작동했다. 본인 확인을 거쳐 결제까지 모든 과정에는 개인 혹은 법인이 존재했다.

그러나 금융 인프라의 기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사람을 대신해서 에이전트가 금융의 주체로 점차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오픈AI는 스트라이프와 챗GPT 내부 결제, 아마존의 대리 구매 실험, 비자·마스터카드의 에이전트 정산 인프라 구축 등 실질적인 움직임들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을 중심으로 만든 기존 금융 인프라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오롯이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다. 마루가 현시점에서 에이전트를 위한 새로운 인프라로 확장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5.1. 이 에이전트는 누구의 것인가

우리가 직원에게 법인카드를 지급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카드에는 사용자 성명이 각인되어 있고, 한도가 설정되며, 모든 결제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은 법인에 귀속된다. 즉, 카드라는 매개체 안에 ‘실제 사용자’와 ‘행위 권한’, 그리고 ‘법적 책임’이 하나의 단위로 설정되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기본 계정 구조는 이러한 연결을 허용하지 않는다. 개인키를 소유한 주체가 계정의 전권을 독점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에이전트에 키를 위임하면 전권 양도의 위험이 발생하고, 반대로 통제권을 분리하면 에이전트의 자율적 운용이 불가능해지는 이분법적 구조에 갇힌다. 결과적으로 에이전트가 사고를 일으켜도 온체인 원장에는 익명 주소만 기록될 뿐, 배후의 운영 주체나 대리 관계를 식별할 방법이 없다.

마루는 이 간극을 ‘등록부(Registry)’를 통해 해결한다.

모든 에이전트는 생성 시점부터 신원 인증을 완료한 개인이나 법인 계정과 강제로 결속된다. 이 대리 관계는 체인 내 별도 영역인 등록부에 명시적으로 기록되며, 에이전트 주소, 소유주 신원, 위임된 권한 범위, 지출 한도가 하나의 데이터 셋으로 각인된다.

이것이 마루가 정의하는 ‘KYA(Know Your Agent)’다. 신원을 한 번 확인하고 끝나는 절차가 아니라, 세 가지가 맞물려 성립하는 상태에 가깝다. 에이전트를 등록한 사람이나 법인이 인증을 마쳤는가, 그 소유자가 위임한 권한의 범위가 무엇인가, 그리고 실제 거래 시점에 그 범위가 지켜지는가다. 앞의 둘은 등록부에 기록되고, 마지막은 규제 준수 계층이 거래마다 검증한다.

주목할 점은 이 등록부가 마루만의 규격이 아니라는 데 있다. 마루는 에이전트 신원 표준으로 논의되고 있는 ERC-8004을 그대로 상속받아, 제네시스 시점부터 체인에 내장된 형태로 배포했다. 어느 앱이 배포한 계약이 아니라 네트워크가 처음부터 들고 있는 단일 등록부라는 뜻이다. 표준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다른 체인에서 만들어진 에이전트 도구가 수정 없이 마루에서 동작하고, 반대로 마루에서 등록한 에이전트의 신원도 표준을 아는 환경이라면 어디서든 읽힌다.

여기서 갈리는 지점이 규제 준수 계층과의 연결이다. 표준 등록부는 에이전트가 누구의 것인지를 기록할 뿐, 그 기록을 거래 승인에 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마루는 이 기록을 규제 준수 계층이 참조하도록 연결해 두었다. 회사가 직원에게 법인카드를 내주는 상황과 구조가 같다. 카드에는 주인이 정해져 있고, 한 번에 쓸 수 있는 금액과 쓸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으며, 결제할 때마다 그 조건이 맞는지 확인된다. 에이전트를 정식 거래 주체로 인정한다는 말은 이 세 가지를 인프라가 대신 처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에이전트 거래 승인을 위한 글로벌 표준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마루는 유연한 구조를 취하며 초기 시장을 다져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5.2.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

법인카드에 한도를 거는 이유는 명확하다. 직원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실수 한 번에 회사가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실수의 규모가 다르다. 사람은 결제 버튼을 잘못 눌러야 사고가 나지만, 잘못 짜인 코드는 같은 실수를 초당 수십 번 반복한다.

건당 상한을 거는 블록과 특정 주소를 걸러내는 블록은 이미 있다. 달라지는 것은 그 블록이 참조하는 값의 출처뿐이다. 사람 계정이라면 인증 등급에 따라 한도가 정해지지만, 에이전트라면 등록부에 기록된 위임 범위가 그 값이 된다. 소유자가 등록부에 100만 원이라 적으면, 규제 준수 계층은 거래마다 그 값을 읽어 초과분을 거부한다.

운영의 시작은 자금의 분리다.

소유자가 자신의 지갑에서 에이전트 계정으로 가용 자산을 예치하면, 에이전트는 오직 해당 잔액 범위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이어지는 정책 설정은 등록부를 통해 구체화된다. 한도를 100만 원으로 명시하면 이를 초과하는 단일 트랜잭션은 즉각 차단된다.

화이트리스트 설정은 자산이 흐르는 경로를 사전 정의하는 장치다. 특정 수신 주소를 미리 등록하면 오직 승인된 목적지로만 전송이 제한되며, 목록을 비워 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범용적인 송금 로직이 작동하는 구조를 지닌다.

개별 에이전트의 한도가 전부는 아니다. 계정을 무수히 생성해 한도를 우회하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시스템은 ‘소유자 통합 한도’라는 상위 가드레일을 둔다. 개별 에이전트가 설정 범위 내에 있더라도, 소유자의 인증 등급에 따라 부여된 전체 거래량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인프라 차원에서 즉시 거래를 거부한다.

5.3. 범위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가

한도를 설정하는 것만큼이나 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일이 중요했다. 검사하는 곳이 한 군데뿐이면 그곳이 뚫렸을 때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루는 거래 전후로 두 번의 안전장치를 두었다.

  1. 지갑이 거래를 서명하기 전에 정책부터 확인한다. 한도를 넘는 송금이라면 여기서 걸린다. 중요한 것은 거절 방식이다. 단순히 안 된다고 답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막혔고 어떤 값이면 통과하는지를 구조화된 사유 코드로 돌려준다. 사람이 읽을 안내문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해석할 수 있는 형식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에이전트는 이 코드를 읽고 금액을 조정해 스스로 재시도한다. 운영자가 개입해 로그를 뒤질 필요가 없다.

  2. 첫 번째 검사를 혹여 우회하더라도 규제 준수 엔진이 체인 위에서 동일한 정책을 재차 확인한다.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한 거래는 블록체인에 기록조차 되지 않았다. 거래가 승인되면 가스비와 원화 환산 금액이 기록에 남았다. 별도의 월말 정산 없이도 모든 비용이 건별로 자동 집계되었다.

이 구조의 핵심은 규제 준수 계층이 거래의 겉모습이 아니라 실제 책임 주체를 본다는 데 있다. 에이전트가 여러 거래를 하나로 묶어 보내거나 다른 계약을 거쳐 우회해도, 인프라는 그 뒤의 소유자를 찾아 그 소유자에게 걸린 정책을 적용한다. 계정을 늘려 한도를 나누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 이유다.

에이전트 소유권을 넘길 때는 안전장치를 작동시켰다. 이전 신청을 하면 상대방이 수락할 때까지 최대 24시간 동안 에이전트를 동결했다. 이 기간에는 송금이나 정책 변경이 불가능하여, 소유권을 넘기기 직전 자산을 몰래 빼가는 행위를 원천 차단했다.

에이전트를 다루는 기술 표준은 아직 초기 단계다. 여러 진영이 각자의 프레임워크를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소유자와 에이전트의 관계를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마루가 등록부와 소유자 연결을 첫 구성으로 잡은 것도 같은 판단에서다. 지금 확정할 수 있는 것과 표준이 무르익어야 정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한 셈이다.

그래서 현 단계의 정책 집행은 체인 바깥에서 이뤄진다. 마루는 정책의 형태를 체인의 문법에 맞춰 미리 설계해 두었고, 온체인 표준이 정립되면 집행 위치를 옮기는 방식으로 이어받을 계획이다. 평판 체계나 세부 검증 절차도 그 시점에 순차적으로 얹힌다.

6. 지금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가

마루는 한국의 제도적 맥락과 특수성을 인프라 수준에서 가장 깊이 있게 해석해낸 체인이다. 이 견고한 토대 위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실물 경제와 맞닿은 금융의 전 영역을 관통한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가장 거대한 변곡점은 두 개의 큰 축이다. 네트워크의 근간이 될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 논의와, 정해진 일정을 향해 나아가는 ‘토큰증권(STO)’ 법제화다. 이 두 논의는 성격이 판이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발행 자격과 주체를 둘러싼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인 ‘기다려야 하는 문제’다. 반면 토큰증권은 2027년 2월 개정 전자증권법 시행이라는 명확한 방향성이 있다.

발행 주체 논의와 토큰증권 일정이 별개처럼 보이지만, 당국의 로드맵은 이 두 축이 결합하는 시점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토큰화된 증권을 무엇으로 결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결국 이 두 논의를 한 지점으로 수렴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무적 대응의 핵심은 제도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영역과 기술적으로 지금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을 분리하는 것이다. 법령이 확정되어야 정할 수 있는 정책의 ‘값’이 있고, 법령이 나오기 전에도 미리 설계할 수 있는 인프라의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제도가 확정된 뒤에 인프라를 고르는 방식으로는 시장 선점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기 어렵다. 시행령 공포와 같은 정책적 시계에 보조를 맞추되, 그 이전에 선제적으로 검증 가능한 영역을 분리해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마루가 준비해 둔 것은 특정 제도적 결론이 아니라, 어떠한 규제 시나리오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다. 검증 조건을 어떤 단위로 쪼개고, 인증 등급과 한도를 어떻게 연결하며, 감사 요청 시 정보의 범위를 어디까지 열어줄 것인가 하는 체계는 법령 확정 이전에 인프라 차원에서 미리 구현할 수 있다.

발행 자격이나 구체적인 검증 요건이 고시되면, 마루는 그 결론을 파라미터 값으로 받아 즉시 코드로 치환해낼 준비가 되어 있다.

결국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정책적 결론이 나오기 전, 마루의 구조 위에서 규제 요건을 어떻게 체계화할 것인가에 대한 실증이다. 어떤 결론이 도출되더라도 즉시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미리 실증해 두는 것은, 정책적 불확실성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체력을 기르는 과정과 같다.

제도가 확정된 이후에는 결코 확보할 수 없는 지금만의 시간, 이것이 인프라를 먼저 준비해야 하는 유일한 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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