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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조 원의 빈자리, 한국이 놓친 법인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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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조 원의 빈자리, 한국이 놓친 법인 시장

가상자산 거래소 법인계좌 허용이 만들어낼 새로운 기회

Key Takeaways

  •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높은 거래 규모에도 법인 참여 제한으로 성장 기반이 개인투자자에 집중돼 있다. 법인계좌 허용은 시장의 수요 기반을 넓히는 다음 단계다.

  • 법인계좌가 허용되면 2030년 법인 가상자산 운용 규모는 최대 82조 원에 이를 수 있다. 거래와 수탁, 프라임 브로커리지 등 관련 금융서비스에서 연간 약 5,700억 원의 매출 기회도 기대된다.

  • 법인계좌 허용이 늦어질수록 국내 수요와 사업 기회는 해외로 이동할 수 있다. 결제와 자산운용 등에서 이미 이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국내 시장의 개방이 늦어질수록 고객과 사업 경험도 해외에 먼저 축적될 가능성이 높다.


1. 기관의 부재, 상방이 막힌 한국 가상자산 시장

한국은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거래가 활발한 시장 중 하나다. 법정화폐를 기반으로 한 가상자산 거래 규모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달러, 유로, 엔 등 주요 법정화폐 가운데 원화의 거래 비중은 최근까지도 30% 안팎을 기록하며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원화 비중이 50%를 넘어 달러를 앞선 시기도 있었다. 한국의 인구와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원화 거래 비중이 국내 가상자산 산업의 실질적인 성장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국내 주요 사업자와 글로벌 사업자의 기업가치를 비교하면 이러한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가별 자본시장 규모와 사업 범위가 달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으나, 이를 감안해도 기업가치 격차는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국내 최대 가상자산 사업자인 두나무(Dunamu)의 기업가치는 코인베이스(Coinbase)의 7분의 1 수준에 머문다.

이러한 차이의 배경에는 개인 중심으로 성장해 온 국내 시장 구조가 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개인투자자의 높은 거래 참여를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법인의 시장 참여는 제도적으로 제한돼 왔다. 반면 미국에서는 코인베이스(Coinbase) 거래량의 80% 이상을 기관투자자가 차지할 만큼 법인 수요가 시장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거래 규모는 컸지만, 국내 시장에는 산업의 다음 성장을 이끌 법인 수요가 사실상 비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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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늦어지는 법인계좌 허용, 남겨진 82조 원의 잠재시장

법인 시장 개방은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상장사와 전문투자자 등록법인 약 3,500개사를 대상으로 투자 목적 거래를 우선 허용한 뒤 참여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해당 법인의 투자 목적 거래도 아직 시행되지 않았으며 일반법인으로의 확대 일정 역시 구체화되지 않았다. 법인계좌 허용이 늦어지면서 국내 시장으로의 법인 자금 유입도 제한되고 있다.

법인계좌 허용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수요 기반을 넓힐 수 있다. 법인 참여가 시장 규모를 얼마나 확대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국내 민간 금융회사와 연기금 등 공적기금의 운용자산을 바탕으로 잠재 시장 규모를 추정했다. 미국 등 법인 참여가 활성화된 시장의 가상자산 편입 수준을 참고해 초기 시장의 상단을 가정하면 2027년 국내 법인의 가상자산 운용 규모는 약 16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법인 참여가 확대될수록 시장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2028년 이후에는 운용자산 증가와 가상자산 편입 확대를 함께 반영했다. 민간 금융회사에는 국내에서 논의된 투자 한도인 5%를 적용하고 연기금 등 공적기금에는 보수적인 운용 특성을 고려해 2%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법인의 가상자산 운용 규모는 2028년 35조 2천억 원에서 2029년 57조 1천억 원으로 증가한 뒤 2030년에는 최대 82조 원에 이를 수 있다. 이는 법인 참여가 충분히 확대된 경우를 가정한 잠재 시장의 상단이며 실제 규모는 제도 개방 속도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1. 연 5,700억 원 규모의 법인 금융서비스 시장

법인계좌 허용은 거래대금 증가를 넘어 가상자산 금융서비스 시장 전반을 확대할 수 있다. 법인은 대규모 주문을 안정적으로 집행해야 하고 보유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체계도 필요하다. 이에 따라 거래소뿐 아니라 수탁과 프라임 브로커리지 등 법인 자산의 거래와 보관, 운용을 지원하는 서비스로 수요가 확장된다.

이러한 수요를 매출로 환산하면 시장의 규모는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해외 법인 시장의 매출 구조를 적용할 경우 2030년 82조 원의 법인 운용자산에서 연간 약 5,700억 원의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법인 거래 수수료뿐 아니라 수탁과 거래 집행, 자금 운용을 지원하는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매출을 포함한 규모다.

법인 운용자산이 늘어날수록 이를 둘러싼 금융서비스 시장도 함께 커진다. 개인 거래 수수료에 집중돼 있던 국내 가상자산 산업에 수탁과 프라임 브로커리지 등 법인 대상 금융서비스가 새로운 수익 기반으로 더해질 수 있다.

2.2. 거래를 넘어 확장되는 가상자산 산업

법인계좌는 투자 목적의 거래뿐 아니라 기업이 가상자산을 활용한 사업을 전개하는 데에도 필요하다. 스테이블코인 결제와 송금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기업이 가상자산을 직접 거래하고 원화로 정산할 수 있어야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법인 거래가 제한되면서 관련 사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도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가상자산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이 성장하고 있다. 레인(Rain), 비브이엔케이(BVNK), 메쉬(Mesh) 등 결제와 정산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평가 방식이 달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관련 기업들이 수조 원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법인계좌가 허용되면 국내에서도 관련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여건이 넓어진다. 결제사와 핀테크 기업은 가상자산을 활용한 결제와 송금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고, 일반 기업도 대금 지급과 정산 과정에서 가상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 법인계좌 개방은 국내 가상자산 산업이 거래 중심의 시장을 넘어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확장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2.3. 법인 참여로 개선되는 거래 환경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개인투자자의 활발한 참여를 바탕으로 높은 거래대금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대형 주문을 처리하는 능력은 글로벌 주요 거래소와 차이가 있다. 최근 일주일간 비트코인 현물 거래를 분석한 결과, 국내 3대 거래소를 합산했음에도 100억 원 주문의 왕복 슬리피지는 213.2bp로 나타났다. 같은 조건에서 바이낸스는 12.2bp에 그쳤다. 주문 규모가 커질수록 국내외 격차도 크게 확대됐다.

이는 국내 시장의 거래대금에 비해 대형 주문을 흡수할 수 있는 시장 깊이(Market Depth)가 충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거래가 활발하더라도 큰 규모의 주문을 받아줄 매수·매도 물량이 부족하면 주문 규모가 커질수록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다. 국내 시장은 거래량에 비해 대규모 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유동성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다.

법인계좌 허용 이후 시장 참여 주체가 다양해지고 전문 유동성 공급자의 참여까지 확대될 경우 이러한 한계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매수와 매도 주문이 두터워지면 대형 주문에 따른 가격 영향과 거래비용도 낮아질 수 있다. 유동성 개선은 법인의 대규모 거래뿐 아니라 개인투자자의 거래 효율성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3. 해외로 이동하는 사업 기회, 얼마 남지 않은 골든타임

법인계좌 허용이 늦어지는 사이 국내 기업의 가상자산 수요는 이미 해외와 연결되고 있다. 알리움(Allium)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2026년 9월까지 한국과 해외 국가 사이에서 확인된 기업 간 스테이블코인 결제 규모는 약 6억 2천만 달러에 달한다. 거래소 입출금과 투자 목적 거래를 제외하고 상품과 서비스의 대가로 이동한 결제만 집계한 결과다. 투자 목적이 아닌 기업 활동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결제와 정산 수요가 이미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수요가 국내 사업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부 무역업체는 국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처리하기 어려워 홍콩 등 해외 법인이나 파트너를 통해 현금화와 정산을 진행하고 있다. 투자와 운용에서도 하이퍼리즘(Hyperithm)은 일본에서 법인 대상 가상자산 운용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미래에셋증권도 홍콩에서 디지털자산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서 발생한 수요와 사업 역량이 제도적 기반을 갖춘 해외 시장에서 먼저 사업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수록 해외에는 고객과 수익뿐 아니라 거래 관계와 사업 경험도 함께 축적된다. 한번 구축된 결제망과 거래 관계는 국내 시장이 뒤늦게 개방된다고 해서 곧바로 돌아오기 어렵다. 사업자 역시 고객과 운영 경험이 쌓인 시장을 중심으로 투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법인계좌 허용의 지연은 단순히 자금 유입 시점을 늦추는 문제가 아니라, 국내에서 형성될 수 있는 사업 기회를 해외에 먼저 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4.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다음 단계, 법인계좌 허용

법인계좌 허용은 법인 자금의 유입을 넘어 새로운 금융서비스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앞서 추정한 것처럼 2030년 법인의 가상자산 운용 규모는 최대 82조 원에 이를 수 있으며, 거래와 수탁, 프라임 브로커리지 등에서 연간 약 5,700억 원의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법인 자금이 늘어날수록 이를 거래하고 보관하며 운용하기 위한 서비스 수요도 함께 확대된다.

그 영향은 금융서비스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업의 가상자산 활용이 늘어나면 결제와 송금은 물론 회계·세무, 보안, 자금세탁방지(AML), 데이터 등 관련 사업의 수요도 커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수요가 국내에서 사업으로 연결되느냐다. 국내에서 거래와 관련 서비스가 이뤄지면 매출과 사업 경험이 국내 기업에 축적되고, 거래 흐름의 파악도 쉬워져 과세와 시장 감독의 기반도 넓어진다.

한국은 이미 높은 거래 규모와 충분한 가상자산 수요를 갖고 있다. 그러나 법인의 참여가 제한되면서 이 수요가 금융서비스와 관련 산업의 성장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 법인계좌 허용은 이미 존재하는 가상자산 수요를 국내 산업의 성장으로 연결하고, 개인 중심으로 성장해 온 시장의 범위를 법인과 기업으로 넓히기 위한 다음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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