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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산 아래의 자본시장: 캔톤 네트워크가 바꾸는 금융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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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산 아래의 자본시장: 캔톤 네트워크가 바꾸는 금융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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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금 시장이 주목하는 자산 토큰화는 수면 위로 드러난 빙하의 일각일 뿐입니다. 그 아래에는 전통 금융의 레일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천조 원 규모의 거대한 시장이 숨겨져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미국 국채를 온체인에 올리는 것을 RWA 시장의 전부로 인식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거대한 자본시장이라는 빙하의 표면만 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진짜 변화는 눈에 보이는 ‘자산의 디지털화’ 너머, 그동안 수면 아래 갇혀 있던 천문학적 규모의 금융 인프라를 바탕부터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1996년 인터넷 도입을 주저하다 시장 주도권을 빼앗겼던 과거 기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제는 눈앞의 작은 토큰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무한한 유동성 연결망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이미 수면 아래의 움직임은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브로드리지의 월 7.7조 달러 규모 온체인 레포 거래와 미국 증권결제소(DTCC)의 국채 토큰화는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이미 금융 시장의 한 축으로 작동 중입니다. 여기에 더해 HSBC 오리온을 통한 홍콩 정부의 60억 홍콩달러 규모 디지털 그린본드 발행과 레포 담보 즉시 활용 사례는 발행과 유통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미래 금융의 잠재력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시들은 모두 캔톤 네트워크(Canton Network)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캔톤 네트워크는 철저히 기관을 위한 설계로 출발했습니다. 스마트컨트랙트(Daml)로 민감한 영업 비밀을 보호하는 동시에, 자산과 대금을 실시간 동시 교환하는 원자적 결제(Atomic Settlement)로 거래 위험을 원천 차단합니다. 특히 바젤위원회(BCBS) 규제를 충족하는 퍼블릭 퍼미션드 구조를 채택해,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재무적 부담 없이 온체인 생태계로 진입할 수 있는 최적의 통로를 마련했습니다.

서구권에서 수많은 성공 사례를 만든 캔톤 네트워크는 이제 아시아로 무대를 넓히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2026년 토큰증권(STO) 법제화 통과로 분산원장의 법적 지위가 보장됨에 따라, 한화투자증권과 신한투자증권, 신한자산운용, KB증권 등 대형 금융사들이 글로벌 발행 및 유통망을 선점하기 위해 캔톤 생태계에 급격히 합류하고 있습니다.

현재 새로운 금융 표준이 다시 정립되고 있습니다. 인프라의 골격이 짜이는 지금, 이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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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6년의 인터넷과 RWA 시장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BlackRock) CEO는 2026년 주주서한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우리는 오늘날의 토큰화가 1996년의 인터넷과 비슷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96년 당시는 시대가 변화하는 지점에 있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이미 나왔으나, 정작 많은 기업들은 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1996년 조사 기준으로 포춘 500대 기업 중 온라인 거래를 접목시킨 곳은 단 26%뿐이었다. 이후 성공 사례가 나오자 나머지 기업들도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그 사이 기업의 순위는 이미 바뀐 뒤였다.

그때처럼 RWA 토큰화 시장도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 많은 기업이 여전히 주저하고 있지만, 선도적인 사례는 이미 나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블랙록의 BUIDL(BlackRock USD Institutional Digital Liquidity Fund)이다. 미국 국채를 온체인에 올린 토큰화 펀드로, 2024년 3월 출시 후 1년 반 만에 7개 블록체인으로 확장하며, rwa.xyz 기준 약 25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규모만이 전부가 아니다. 현실 세계의 국채를 온체인으로 옮겨 파는 것만이 아니라, 발행된 자산 위에 새로운 금융 서비스가 쌓이는 단계로 시장이 넘어갔다. 다수의 디파이 프로토콜이 BUIDL을 기반 자산으로 활용하고, 바이낸스는 BUIDL을 거래 담보로 공식 인정했다.

시장 자체도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다. rwa.xyz 기준, 투자자가 지갑에서 직접 보유하고 거래하는 온체인 발행 자산(Distributed Asset)은 2026년 5월 기준 약 340억 달러다. 2020년 초 15억 달러에서 시작해 6년 만에 20배 이상 커진 수치다. 여기에 실물은 수탁기관이 보관하되 소유권을 체인에 기록한 온체인 표상 자산(Represented Asset)까지 합산하면 규모는 약 3,600억 달러로 뛴다.

2. 이미 시작된 RWA 시장

자산을 토큰화한다는 것은 기존 금융 상품을 단순히 디지털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작동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결제 처리 속도와 거래 후 정산 구조까지 전부. 기존 시스템을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더 빠르고 정확한 레일을 새로 깔아 올리는 방식이다.

그런데 많은 논의가 블랙록 BUIDL에서 멈춘다. BUIDL은 미국 국채를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으로 발행한 상품이다. RWA 시장에서 BUIDL이 상징적 사례인 것은 맞다. 하지만 사례 하나로 “토큰화를 왜 해야 하는가”를 설득하기는 어렵다.

금융은 크다. 채권 발행 너머에 레포 시장이 있고 수많은 상품과 구조가 존재한다. 금융 시장이라는 큰 시장 아래 세부 시장별로 가진 문제가 다르고, 이를 해결하면서 만들어낼 가치도 다르다. 더 넓게 봐야 한다.

단기 자금 시장

단기 자금 시장의 대표 거래인 레포(Repo) 거래는 기관이 보유한 채권을 담보로 단기 자금을 조달하는 거래다.

쉽게 풀면 이렇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리듯, 기관들은 금고에 쌓인 채권을 다른 기관에 잠깐 넘기고 현금을 빌린다. 채권을 받은 쪽은 안전한 담보를 손에 쥔 셈이라 안심하고 현금을 빌려준다. 약속한 날이 되면 채권을 돌려주고 현금에 이자를 더해 되받는다.

기간은 대부분 하루짜리, 즉 오늘 맺고 내일 갚는 익일물(overnight)이다. 급하면 더 짧게, 필요하면 수주에서 수개월짜리 계약도 있다. 채권이라는 안전한 담보가 있고, 금리도 낮아 자주 사용되는 거래다.

문제

문제. 제한된 시스템 운영 시간

레포 거래에서 담보는 시스템이 운영되는 시간 안에서만 움직인다. 평일엔 하루 한 번, 주말과 공휴일엔 아예 멈춘다. 하지만 시스템이 멈춰 있는 동안에도 리스크는 잔존한다.

주말 사이 시장에 악재가 터져도, 가격 고시와 정산이 멈춰 있기 때문에 손익은 확정되지 않는다. 문제는 월요일 개장 순간이다. 금요일 종가 대비 크게 불리한 가격이 나오면, 주말 동안의 변동분이 한꺼번에 마진콜로 청구된다. 주말 내내 계산되지 않고 쌓인 리스크가 월요일 아침 한 번에 정산되는 구조다.

마진콜이 청구되는 순간 즉시 유동성을 마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채권을 팔거나 레포로 현금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마진콜 대응은 그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미리 쌓아 둔 현금이 필요하다. 유동성을 마련했지만 여분의 현금을 별도로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솔루션

온체인 레포는 이 문제를 구조에서 해결한다. 핵심은 DvP(Delivery versus Payment) 메커니즘이다. 담보로 채권을 맡기는 순간과 현금을 받는 순간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방식이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집는 순간 결제가 동시에 되는 것처럼, 채권과 현금이 한 번에 교환된다. 한쪽만 먼저 내주는 일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제 거래는 이렇게 돌아간다. 자금이 필요한 쪽이 금액·금리·만기 조건을 올리면 상대방이 수락한다. 양측이 각자의 자산을 스마트컨트랙트, 즉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디지털 계약에 맡긴다. 채권을 가진 쪽은 토큰화된 채권을, 현금을 가진 쪽은 토큰화된 현금을 각각 맡기고, 양쪽 확인이 끝나는 순간 교환이 자동으로 완료된다.

토큰화된 채권과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위에서 24시간 움직인다. 기존 결제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아서 금요일 오후든 일요일 새벽이든 담보를 움직일 수 있다. 시스템 운영 시간의 제한이 사라진다.

정산 주기도 바뀐다. 기존에는 수작업 확인이 필요해 정산이 하루 한 번으로 제한됐다. 스마트컨트랙트는 포지션 손실이 발생하는 순간 담보 요청과 정산을 자동으로 실행한다. 공백이 없으니 처음부터 여유분을 쌓을 이유도 줄어든다.

케이스 스터디 (Broadridge DLR)

브로드리지(Broadridge)는 은행과 증권사의 결제·정산 과정을 기술로 처리하는 글로벌 자본시장 인프라 기업이다. 이 회사가 캔톤 네트워크를 기반 블록체인으로 삼아 DLR(Distributed Ledger Repo), 즉 분산원장 기반 레포 거래 플랫폼을 출시했다.

DLR은 블록체인 기반이라 기존 결제 인프라의 운영 시간에 묶이지 않는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담보 이동과 정산이 가능하고, 하루 중 어느 시점에도 레포 거래를 개시하고 종료할 수 있다. 시스템 운영 시간의 제한으로 발생하던 리스크가 구조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또한 스마트컨트랙트로 레포 거래 전 주기를 자동화해 결제 오류와 분쟁이 줄고, 담보 재활용성도 높아졌다.

2026년 4월 기준 DLR의 월간 총 결제 규모는 7.7조 달러, 일평균 결제 규모는 3,680억 달러다. HSBC, UBS, 소시에테 제네랄 등 글로벌 주요 은행들이 이미 플랫폼에 참여 중이다.

증권 결제(Settlement) 인프라

증권 결제(Settlement)란 거래가 체결된 뒤 매수자가 대금을 내고 매도자가 증권을 넘기는 단계다. 여기서 T는 거래일(trade date)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T+1, T+2로 오늘 거래해도 자금 이동은 최소 하루에서 이틀이 요구된다. 쉽게 비유하면 부동산 매매와 비슷하다. 매매 계약을 맺어도 등기 이전과 잔금 지급은 며칠 뒤다. 거래와 자산 이동의 시점이 다른 것이다.

문제

문제 1. 결제 시차와 거래 상대방 리스크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 증권 결제 인프라는 거래와 자산 이동 사이의 시차가 존재한다. 때문에 그 사이 거래 상대방이 파산한다면 큰 손실이 생기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중앙청산소(CCP)가 존재한다. CCP는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 끼어들어 한쪽이 부도나도 상대방이 손실을 직접 떠안지 않게 한다. 미국은 NSCC, 한국은 한국거래소(KRX) 청산결제본부가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CCP가 최종 부도에 이른 사례는 없다. CCP가 무너지면 해당 국가 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회원사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다만 극단 장세에서 한계를 드러낸 사례는 있다.

1987년 블랙먼데이 당시 홍콩선물거래소 청산소가 대규모 마진콜 미납으로 지급불능 직전까지 몰렸고, 홍콩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거래소를 4일간 폐쇄한 뒤 수습됐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2018년 나스닥 클리어링 사태에서도 손실보전기금 일부가 실제로 소진됐다.

문제 2. 파편화된 장부와 대사 비용

주식 한 건이 거래되면 발행사, 수탁사, 청산소, 결제기관이 각자 자기 장부에 따로 기록한다. 같은 거래를 네 곳이 각자 적는 셈이다. 각 기관의 장부는 즉시 동기화되지 않아, 표준 메시지 형식으로 사후에 맞춘다. 이 과정을 대사(reconciliation)라 한다.

문제는 장부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 기관이 같은 거래를 처리하는 시점이 다르고, 내부 시스템 형식이 달라 메시지를 변환하는 과정에서 데이터가 누락되거나 바뀌기도 한다. 때문에 데이터가 맞지 않으면 담당자가 직접 확인하고 수동으로 정정해야 한다. 자동화된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오류가 존재한다.

대사와 포지션 불일치를 처리하는 운영 인력과 시스템 비용이 계속해서 필요한 이유다. 배당, 분할, 합병처럼 기업 구조나 주주 권리에 영향을 주는 이벤트, 즉 코퍼레이트 액션(Corporate Action)이 생기면 각 기관이 장부를 따로 업데이트하고 다시 대사를 맞춰야 해서 작업량은 더 늘어난다.

솔루션

증권 결제 인프라가 온체인으로 이동하게 되면 두 가지가 바뀐다. 모든 참여자가 같은 장부를 보게 되고, 거래 체결과 자산 이동이 동시에 일어난다.

지금은 발행사, 수탁사, 청산기관, 결제기관이 각자 장부를 따로 쓴다. 같은 거래를 네 곳이 각자 기록하고 사후에 맞춘다. 온체인에서는 블록체인 하나가 모든 참여자의 공식 장부가 된다. 거래가 생기는 순간 전원의 데이터가 동시에 갱신된다. 대사(reconciliation) 과정이 사라진다.

같은 장부 위에 대금과 증권이 함께 올라오면 거래 체결과 자산 이동을 하나의 트랜잭션으로 묶을 수 있다. 지금은 대금은 은행 시스템, 증권은 예탁결제원 시스템에서 따로 움직인다. 온체인에서는 둘이 같은 환경에 있어 동시에 실행된다. 이를 원자적 결제(Atomic Settlement)라 한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면 전체가 성공하고, 하나라도 실패하면 전체가 취소된다.

케이스 스터디 (DTCC)

온체인 증권 결제는 이미 실제 거래에서 작동하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은 디지털 결제 플랫폼 DiSH를 Canton 위에 올려 증권 결제에 적용했고, 영국 Lloyds Bank는 토큰화된 영국 국채를 토큰화된 예금으로 매입하는 거래를 완료했다. 발행부터 결제까지 온체인에서 처리된 사례다.

가장 결정적인 사례는 DTCC다. DTCC(Depository Trust & Clearing Corporation)는 미국 증권 결제의 핵심 인프라로, 미국에서 거래되는 증권의 청산과 결제 대부분이 이 기관을 거쳐 처리된다. 캔톤 네트워크를 만든 디지털 에셋(Digital Asset)과 손잡고, 2025년 12월 SEC로부터 노액션 레터(특정 행위에 대해 제재하지 않겠다는 규제 당국의 사전 확약)를 받아 DTC 수탁 미국 국채를 캔톤 네트워크 위에서 토큰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026년 상반기 MVP(최소기능제품) 출시가 목표다.

DTCC가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의 신호다. 결제 실패 한 번이 라이선스 취소로 이어질 수 있는 기관이 온체인 인프라를 선택했다는 것은, 현 결제 아키텍처에 내재된 리스크가 새로운 레일로 이전하는 운영 리스크보다 크다는 판단을 내렸음을 의미한다.

자금 조달 (Capital Raising)

자금 조달 시장은 정부나 기업이 채권·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모으는 시장이다. 발행 단계의 1차 시장과 이미 발행된 증권이 투자자 간에 거래/활용되는 2차 시장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정부가 도로를 깔거나 기업이 공장을 짓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자. 자기 돈으로 감당할 수 없으니 투자자에게 손을 벌린다. “이 돈을 빌려주면 만기에 이자와 함께 갚겠다”고 약속하는 증서가 채권이고, “이 회사의 지분을 갖겠다”고 내주는 증서가 주식이다.

문제

문제 1. 발행 프로세스 지연

투자등급 무담보채 한 건을 발행하려면 발행사, 인수단, 법무법인 등이 관여하며, 발행 결정부터 청약·배정·결제까지 통상 수주, 구조화 상품의 경우 수개월이 걸린다.

새 아파트 분양과 비슷하다. 시행사가 분양을 결정해도 인허가·모집 공고·청약·당첨자 발표·계약·잔금 단계마다 다른 주체들이 필요하며, 단계별로 늦어지는 이유가 계속 생긴다.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발행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쌓인다. 헤지 비용이 붙고, 투자자 수요 변동 가능성이 커지며, 최악의 경우 딜 자체가 무산된다. 발행을 결정한 뒤로 상황은 변하기에 시간이 곧 리스크다.

문제 2. 파편화된 담보 시스템

기관 투자자가 자산을 사는 이유는 수익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산 자산을 레포에 활용하거나 담보로 넣거나 다른 거래와 연결할 수 있으면 자본을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담보물 활용에 대해 상대방과 합의가 됐더라도 실행이 어렵다. 담보 거래는 적격 확인, 할인율 계산, 소유권 이전이 순서대로 맞아떨어져야 하고, 단계마다 다른 기관이 개입한다. 그런데 이 기관들의 시스템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각 단계마다 담당자가 메시지를 보내고 확인을 기다려야 한다. 하루에 수십 건이면 며칠이 걸린다. 이 구조에서는 발행된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실제로 굴릴 수 있는 자산은 따로 있다.

솔루션

온체인 발행은 위 두 문제에 다르게 접근한다.

발행 단계 전체가 스마트 컨트랙트 위에서 진행된다. 규제 범위 안에서 합의된 발행 조건이 코드로 정의되고, KYC·AML 확인 이후 청약자 등록부터 배정·대금 결제까지 자동으로 처리된다. 사람이 끼어들어 확인하고 메시지를 변환하던 단계가 사라지니 발행 사이클이 크게 단축된다.

발행 후 활용 단계도 구조가 바뀐다. 토큰화된 자산은 같은 네트워크 위에 모든 참여 기관이 같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환경에 놓인다. 담보 거래의 적격 확인, 할인율 계산, 소유권 이전이 별도 시스템 사이를 오가지 않고 하나의 흐름 안에서 처리된다. 발행사·인수단·예탁기관·담보관리기관이 따로 보던 장부가 한 장부로 통합되니, 자산이 발행된 후 채택만 된다면, 다른 거래의 담보나 기초자산으로 바로 쓸 수 있다.

다만 이 모델이 자리 잡으려면 풀어야 할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발행 정보의 프라이버시다. 발행 조건, 인수단 배정, 청약 가격, 투자자 명단은 시장에 나와서는 안 되는 데이터다. 정보가 유출되면 시장 가격이 미리 움직이고, 발행사는 더 비싼 조건을 부담하게 된다. 기존 퍼블릭 무허가 블록체인은 지갑 주소만 가려질 뿐 모든 거래 내역이 모두에게 공개되는 구조라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온체인 발행이 본격화되려면, 거래 정보가 당사자에게만 보이는 허가형 인프라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케이스 스터디 (HSBC Orion)

HSBC는 자산 규모 3조 달러의 영국계 글로벌 은행이다. 채권 인수와 발행 주관 분야에서 주요 기관 중 하나로, 2023년 자체 디지털 자산 플랫폼 HSBC Orion을 출시해 디지털 채권 발행 인프라로 운영하고 있다. HSBC Orion은 금융기관 전용 허가형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캔톤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한다.

2024년 2월, 홍콩 정부는 HSBC Orion을 통해 60억 홍콩달러(약 1조 원) 규모의 디지털 그린본드를 발행했다. 정부 발행 디지털 채권 중 사상 첫 다통화(HKD, CNH, EUR, USD) 발행이었고, 8개 국적의 50여 개 글로벌 투자자가 참여했다. 디지털 채권 발행 초기 사례로는 이례적인 참여 규모다. 결제 사이클은 기존 T+5에서 T+1로 단축됐다.

이 발행이 갖는 의미는 발행 자체보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에 있다. 발행 완료 후 수일 내, HSBC와 BEA(Bank of East Asia)는 이 디지털 그린본드를 담보로 환매조건부거래(레포)를 체결했다. 발행된 채권이 시장에 풀리자마자, 같은 네트워크 위에서 즉시 담보로 활용된 것이다. 발행과 활용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흐름이 처음 확인된 사례다.

구조는 이렇다. HSBC Orion이 디지털 그린본드를 발행하면, 그 채권은 캔톤 위 자산 등록부(Bond Registry)에 토큰 형태로 기록된다. HSBC와 BEA가 레포 거래를 체결하면, 같은 캔톤 위 다른 애플리케이션이 이 토큰을 담보로 잡고 대금을 동시에 정산한다.

홍콩 정부는 이 발행을 단발성으로 두지 않았다. HKMA는 이 발행 이후 ‘Digital Bond Grant Scheme’을 출범시켜, 디지털 채권을 발행하는 발행사에 발행 비용의 절반을 보조하기로 했다. 일회성 실험을 시장 인프라의 표준으로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결제 통화 (Stablecoins & Payments)

스테이블코인은 1달러에 1대1로 가치가 고정된 디지털 통화다. 일반 암호화폐와 달리 시세 변동이 거의 없어, 사실상 블록체인 위에서 움직이는 화폐로 작동한다. USDC, USDT가 대표적이다.

문제

문제 1. 공개 거래 정보

퍼블릭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보냈는지, 언제 보냈는지, 잔액이 얼마인지를 블록 익스플로러(블록체인 거래 내역 조회 도구)에서 지갑 주소 하나만 검색하면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한 내역을 분석하면, 거래처와 협상한 단가, 매출 시즌 패턴, 신규 시장 진출 타이밍, 인수합병 자금 흐름, 경영진 급여 등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즉, 분명한 결제 효율은 있지만 데이터 전면 공개라는 점에서 한계점이 존재한다.

문제 2. 내부 시스템과의 분리

기업이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받으면 자금은 블록체인 위 지갑에 들어온다. 이 지갑은 회계 시스템,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운용 플랫폼과 이어져 있지 않다.

기업의 자금 관리 부서는 USDC를 은행 계좌로 빼낸 뒤 회계 처리하고, 운용 상품에 넣는다. 결제는 수초 안에 왔는데, 그 돈을 사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빠른 결제의 실효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솔루션

블록체인 인프라 설계를 바꾸면 두 문제가 구조적으로 달라진다.

거래 정보는 당사자끼리만 본다. 송금 금액, 거래 상대, 잔액이 외부에 안 보이고, 권한을 받은 규제 기관과 컴플라이언스 파트너만 내역을 확인한다. 프라이버시와 감독이 같이 작동한다.

결제 자금이 들어오는 순간 ERP, 회계 시스템과 바로 붙는다. 중간 단계 없이 곧장 처리된다. 자금이 도착하는 순간 바로 일한다.

케이스 스터디 (Bitwave)

Bitwave는 미국의 디지털 자산 회계·재무 플랫폼이다. NetSuite, QuickBooks, Sage Intacct 같은 주요 ERP와 연동된다. Bitwave는 캔톤 네트워크 위에 스테이블코인 기반 비공개 B2B 결제 인프라를 올렸다.

인보이스가 발행되면 Bitwave가 캔톤 네트워크 위 스마트컨트랙트로 결제를 생성한다. 결제가 실행되는 순간 송금자 ERP에는 매출이, 수취자 ERP에는 매입이 자동 기록된다. SOC 컴플라이언스 감사도 같은 데이터 위에서 그대로 돌아간다. 결제, 회계, 컴플라이언스가 한 워크플로우에서 끝난다.

거래 정보는 외부로 새지 않는다. 두 거래 당사자와 권한을 받은 감사 기관만 내역을 본다. 다른 캔톤 네트워크 참여자에게는 거래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거래처 단가, 매출 패턴, 거래 빈도 같은 영업 정보가 그대로 보호된다. Daml이 거래 가시성을 당사자 외에는 기본으로 차단하도록 설계한 결과다.

3. 모든 사례가 모이는 곳: 캔톤 네트워크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분야가 다르고 참여 기관도 다르지만, 모두 캔톤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한다. 기관들이 요구하는 조건 세 가지를 이 인프라가 동시에 갖췄기 때문이다.

조건 1: 거래 단위 프라이버시

국채 레포 거래에서 참여 기관들은 자신이 관여한 거래만 봤다. 스테이블코인 결제도 잔액과 거래 상대방 정보가 시장에 노출되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거래 정보가 모두에게 열리면 포지션이 시장에 드러나 프런트러닝 위험에 놓인다. 그렇다고 정보를 전부 막으면 규제 당국이 들여다볼 수 없다. 거래 당사자는 전체를, 규제 당국은 감독에 필요한 부분을, 그 외 참여자는 자신과 무관한 정보를 차단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캔톤 네트워크는 프로토콜 레벨에서 거래 단위 프라이버시(Sub-transaction Privacy)를 구현한다. 스마트컨트랙트가 각 참여자에게 자신에게 해당하는 부분만 전달한다. 증권과 현금을 동시에 교환하는 거래에서 은행은 현금 이동만, 증권 등록 기관은 증권 이동만 본다. 매도자, 매수자, 거래 앱만 양쪽을 본다. 이 감사 가능성은 규제 요건과도 맞닿아 있다.

Elliptic과 TRM Labs가 슈퍼 밸리데이터 및 통합 파트너로 직접 연결돼 AML 감독을 수행하고, 주요국 보고 요건과도 호환된다.

조건 2: 원자적 결제와 앱 간 상호운용성

국채 레포에서 토큰화된 국채와 현금이 단일 트랜잭션으로 교환됐다. HSBC가 발행한 디지털 그린본드는 발행 직후 BEA의 레포 담보로 바로 쓰였다.

이런 거래가 가능하려면 원자적 결제가 필요하다. 모든 단계가 동시에 완료되거나 동시에 취소돼야 한다. 국채를 팔고 현금을 받는 과정이 청산기관, 수탁은행, 결제 시스템을 순서대로 거치며 보통 이틀이 걸린다. 한쪽은 이미 자산을 넘겼는데 상대방이 지급 불능에 빠지면 먼저 이행한 쪽이 손실을 떠안는다. 리먼브라더스 파산 때 미결제 거래들이 수주간 시장을 묶어놓은 것도 이 구조 때문이었다.

원자적 결제는 이 문제를 없앤다. 거래가 시작되면 모든 당사자가 자기 몫의 유효성을 확인하고 승인 신호를 보낸다. 전원이 승인해야 실행된다. 하나라도 거부하면 전체가 취소된다. 한 번 확정된 거래는 되돌리지 않는다.

조건 3: 퍼블릭 퍼미션드 구조

HSBC, UBS, 소시에테 제네랄, LSEG 같은 보수적인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캔톤 위 사례에 반복 등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젤위원회(BCBS)는 2022년 12월 토큰화 자산을 두 분류로 나눴다. Group 1은 토큰화 전통 자산과 스테이블코인으로, 기초 자산과 동일한 자본 적립 기준이 적용된다. Group 2는 퍼미션리스 블록체인에서 발행된 자산으로, 최대 1,250%의 위험 가중치가 붙는다. 자산 금액 전체를 자본으로 쌓아야 하는 수준이다.

같은 채권이라도 어느 블록체인 위에 있느냐에 따라 재무 부담이 완전히 달라진다. 블랙록 BUIDL처럼 이더리움 위에서 성장한 펀드는 주요 보유자가 거래소, 디파이, 크립토 펀드 등 바젤 규제 밖 주체였기에 가능했다. 규제 대상인 글로벌 은행이 같은 자산을 장부에 담으려면 선택지가 두 개다. 퍼미션리스 체인은 Group 2로 분류돼 자본 부담이 커지고, 폐쇄형 프라이빗 체인은 규제를 피하지만 기관 간 연결이 끊긴다.

캔톤 네트워크는 퍼블릭 퍼미션드(Public Permissioned) 구조로 이 딜레마를 푼다. 앱 제작사가 참여자 검증 기준과 접근 권한을 직접 정의하고, 각 트랜잭션은 해당 거래의 이해당사자 노드들만 검증한다.

캔톤은 바젤이 퍼미션리스 체인에서 지적한 핵심 위험 요소를 완화함으로써, BCBS Group 1에 일반적으로 연관된 특성에 부합하도록 설계됐다.

4. 캔톤 네트워크의 기관 설계 구조

캔톤 네트워크는 처음부터 기관 금융을 위해 설계됐다. 출발선부터 달랐다. 캔톤 네트워크의 기반 기술인 캔톤 프로토콜과 Daml 스마트컨트랙트 언어를 개발한 디지털 에셋(Digital Asset)은 실제로 JP모건, 시티, 골드만삭스, DTCC 같은 글로벌 기관들에게 투자를 받기도 했다.

이후 디지털 에셋은 호주증권거래소(ASX) 결제 시스템 교체, DTCC 신용파생상품 인프라 재구축 같은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며 기관 금융이 실제로 요구하는 조건을 현장에서 체득하고 이를 실제 기술로 전환했다. 즉, 캔톤 네트워크는 처음부터 기관용으로 설계된 인프라다.

Daml: 권한과 프라이버시가 코드에 들어가 있는 언어

기관 금융에서 “누가 무엇을 볼 수 있는가”는 거래의 본질이다. 채권 발행에서 인수단 배정 정보가 새면 시장 가격이 미리 움직이고, 레포 거래에서 담보 규모가 노출되면 상대방이 협상력을 잃는다. 권한은 거래에 부속된 요구사항이 아니라, 거래 그 자체의 일부다.

캔톤 네트워크는 Daml을 통해 데이터 권한을 코드단에서 설정한다. 컨트랙트를 작성할 때 누가 서명자(signatory)이고 누가 관찰자(observer)이며 누가 특정 액션을 실행할 통제자(controller)인지까지 같은 코드 안에 명시한다. 비즈니스 로직과 프라이버시 정책이 따로 관리되지 않는다. 컨트랙트가 곧 권한 명세서다.

Canton Protocol: 거래 당사자만 검증하는 합의

Daml이 권한을 정의했다면, 그 권한이 실제 거래에서 어떻게 집행되는지가 다음 질문이다. 일반 블록체인은 거래 한 건을 전 세계 수만 개 노드에 동일하게 기록한다. 노드를 통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면, 앞서 설정한 프라이버시는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캔톤은 거래의 이해당사자만 보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 거래 단위 프라이버시(Sub-transaction Privacy): 한 거래 안에서도 당사자별로 자기에게 해당하는 부분만 받아본다. 거래 데이터는 종단간 암호화되고, Daml이 정한 권한 규칙에 따라 필요한 사람에게만 복호화 키가 전달된다.

  • 이해당사자 기반 합의(Proof-of-Stakeholder): 거래 당사자가 곧 검증자다. 제3자는 데이터를 못 본다. 거짓 검증도 통하지 않는다. 양측이 기록한 거래 내용이 맞지 않으면 즉시 드러나고, 한쪽이 거부하면 거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될 사람은 보지도 검증하지도 않는다. 봐야 할 사람이 본 만큼만 검증한다.

네트워크의 네트워크(Network of Networks): 서브넷이 연결된 인터넷 구조

기관마다 권한 정책, 거버넌스, 수수료 구조가 다르다. 한 기관이 다른 기관의 룰을 그대로 따를 이유가 없다. 캔톤 네트워크는 각자 원하는 구조로 서브넷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

참여자는 화이트리스트로 통제하고, 거래 승인을 단일 운영자에게 둘지 컨소시엄 다수결로 둘지 거버넌스 정책으로 결정한다. 수수료, 처리 속도, 컴플라이언스 체크 시점도 서브넷별로 다르게 설정한다.

서브넷이 여러 개라면 그 사이 거래는 어떻게 처리되느냐가 문제다. 일반 브릿지는 한쪽에서 자산을 잠그고 다른 쪽에서 새로 발행한다. 보관소 키 한 세트만 뚫리면 전체 자산이 무너지는 구조다. 로닌, 웜홀, 노매드 해킹 피해만 합쳐도 10억 달러가 넘는다. 캔톤은 자산을 옮기지 않는다. 각 서브넷에 자산을 그대로 두고 양쪽 장부의 소유권만 동시에 갱신한다.

HSBC와 BEA의 담보 거래를 예로 들면, HSBC가 발행한 채권은 HSBC 서브넷에 그대로 있다. BEA의 레포 앱이 그 채권을 담보로 잡는 거래를 직접 실행하고, HSBC는 채권 부분을, BEA는 현금 부분을 각자 서브넷 룰로 검증한다. 두 서브넷이 각자 OK 신호를 보내면 양쪽 장부의 소유권이 동시에 갱신된다.

Global Synchronizer: 데이터를 보지 않고 거래를 동기화하는 인프라

서브넷이 여러 개라면 주문을 받는 키오스크가 많아지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그 사이 거래의 순서를 정하는 인프라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인프라가 거래 데이터까지 들여다본다면 프라이버시 설계 전체가 무너진다. 당사자에게는 가려놓고 운영자에게는 다 보이는 구조라면, 가장 민감한 정보가 가장 넓은 범위에 노출되는 셈이다.

Global Synchronizer는 이 모순을 푼다. 거래 내용을 복호화할 권한 없이 순서만 정한다. 봉인된 봉투를 배달하는 우체국처럼, 무엇이 거래되는지 모른 채 메시지를 받아 순서를 정하고 목적지에 전달한다.

검증 구조는 두 단계다.

  1. 검증자(Validator): 애플리케이션 단 거래를 검증하며, 자신이 이해당사자인 거래만 본다.

  2. 슈퍼 검증자(Super Validator): Global Synchronizer를 운영하며 거래 순서를 합의하지만, 거래 데이터는 보지 못한다.

특히, 슈퍼 검증자는 신원이 검증된 기관만 맡으며, 2026년 4월 기준 45곳 이상으로 확장됐다. 즉, 인프라 운영과 데이터 접근이 분리된 구조로 캔톤은 인프라를 공유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잃지 않는다.

CIP-56: 토큰이 따르는 표준

앞의 네 기술이 인프라라면, CIP-56은 그 위 자산이 지켜야 할 규칙이다. 자산이 표준을 따르지 않으면 지갑, 거래소, 결제 앱과 호환되지 않는다. KYC 같은 컴플라이언스 절차를 표준 안에 담지 못하면 기관은 별도 시스템을 따로 운영해야 한다.

CIP-56은 캔톤 위 토큰의 발행과 이동을 정의하는 인터페이스 표준이다. 이더리움의 ERC-20에 해당하며, 기관 환경에 맞춰 세 가지가 추가됐다.

  1. 프라이버시 보존형 잔액 관리: 잔액과 거래 이력을 권한 있는 당사자만 본다. ERC-20처럼 모든 지갑 잔고가 공개되지 않는다.

  2. 다단계 이체 지원: 토큰 발행자와 수신자가 각자 승인해야 이체가 완료된다. KYC와 화이트리스트가 토큰 표준 안에 내장된 셈이다.

  3. 원자적 DvP 네이티브 지원: 자산과 현금이 한 트랜잭션에서 동시에 교환된다. ERC-20은 별도 스마트컨트랙트나 DEX 인프라가 있어야 가능하다.

CIP-56을 따르는 자산은 호환되는 모든 지갑, 거래소, 앱에서 그대로 작동한다. Bitwave의 USDCx 결제, 2025년 12월 Tradeweb이 성사시킨 미국 국채 대 USDC 실시간 온체인 레포가 모두 CIP-56 기반이었다.

5. 아시아로 확장하는 캔톤 네트워크

이렇듯 캔톤 네트워크는 기관향 인프라 기반을 다지고, 미국과 유럽에서 먼저 자리를 잡으며 수많은 케이스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제 아시아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활동의 눈에 띈다. 한국 토큰증권(STO) 제도화를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2026년 1월 1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분산원장이 법적 효력을 갖는 전자등록계좌부로 공식 인정되면서, 블록체인 위에 기록된 권리가 기존 전자증권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게 됐다. 시행은 2027년 1월이다.

또한 정부는 123대 국정과제에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을 금융위원회 소관 과제로 명시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도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법이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기관들은 이미 움직였다. 미래에셋, 한국투자, NH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STO 컨소시엄을 통해 시스템 구축을 완료했다. 은행들은 수탁 동맹을 구축하며 주도권을 확보하는 중이다.

특히 한화투자증권은 캔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26년 2월 RWA 부문 대규모 채용에서 Web3 Back-end 우대 조건으로 “Canton Network 기반 Daml 스크립트 개발 경험 또는 이해를 가진 분”을 명시했다. 탐색 단계를 지나 실제 빌딩 과정에 접어든 것이다. 이후 2026년 4월, Digital Asset과 MOU를 체결했다.

2026년 6월 들어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신한자산운용과 신한투자증권이 각각 캔톤 재단(Canton Foundation)과 양해각서를 맺었다. 두 회사는 캔톤 네트워크의 거버넌스에 직접 참여하고, 한국 금융상품을 해외 투자자에게 연결하는 방안을 함께 찾기로 했다.

KB증권도 곧바로 합류했다. 캔톤 재단,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 웨이브릿지와 함께 국내 자본시장 거래에 분산원장 기반 인프라를 적용하는 방안을 공동 검토하기로 했다. 국내 금융자산을 기초로 한 상품을 글로벌 시장에서 발행하고 유통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 외 아시아 각 지역에서도 협력 내용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JSCC·노무라홀딩스·미즈호파이낸셜그룹이 캔톤 위에서 일본 국채(JGB)를 담보로 활용하는 토큰화 PoC를 2026년 4월 공동 착수했다.

홍콩은 이미 한 발 앞서 있다. HKMA 산하 결제기관 HKFMI가 홍콩 채권결제기관(CMU)에 캔톤 기술을 직접 통합해 국채 결제 인프라에 적용했다. 통화당국 수준에서 인프라 전환이 이루어진 사례다. 싱가포르에서는 Hydra X가 MAS 규제 환경 안에서 캔톤 위 구조화 상품 SVT를 출시하며 실물 검증을 마쳤다.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고, 기관들은 움직이고 있다. 선점의 가치가 가장 큰 시점이 지금이다.

6.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그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두 가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것인가, 단계별로 얼마나 걸리는가. 참여 방식이 불분명하면 자원이 흩어지고, 분명한 타임라인이 없으면 의사결정이 늘어진다.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것인가?

기관의 현재 위치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진다. 캔톤 진입 경로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난도가 낮은 순서로 정리했다.

경로 선택의 기준은 기관의 현재 상황이다.

당초부터 기관이 자산 발행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 자연스러운 출발은 노드 운영 또는 재단 멤버십이다. 캔톤 안에서 실제 사례와 방향성을 먼저 경험하고, 그 위에 자산 발행을 더하고, 인프라를 통합하고, 자체 앱을 올린다. 다섯 경로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 가능한 자리에서 시작해 완성형을 향해 쌓아가는 구조로 봐야 한다.

단계별로 얼마나 걸리는가?

해외 기관들이 처음 검토에서 운영 안착까지 걸린 시간을 보면 단계별 흐름이 대체로 비슷하다. 각 단계는 길어야 1년 안쪽이고, 빠르면 3개월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예를 들어, 런던증권거래소그룹 산하 DiSH는 디지털에셋·금융기관 컨소시엄과 캔톤 위에서 PoC를 마치고 2026년 1월 정식 출범했다. 또한 SBI Digital Asset Holdings는 2024년 7월 슈퍼 검증인을 맡으면서 캔톤 재단 Premier 멤버십까지 확보하며 네트워크의 핵심 주체로 올라섰다.

이 처럼 각 단계는 니즈에 맞게 순서대로 밟아야 한다. 단계 간 시차가 있고, 앞 단계 없이 다음 단계는 없다. 전체 흐름에 통상 1년 안팎이 걸린다. 그 출발점인 평가·학습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캔톤의 기술 구조와 인프라 설계를 검토하는 것이 이 단계의 목표지만, 내부 검토가 그에 앞선다. 어떤 자산을 어느 사업 부문에 적용할 것인지, 내부 의사결정 체계는 갖춰져 있는지. 이 질문에 답이 없는 채로 넘어가면, 시간이 지나 첫 단계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캔톤 진입을 검토하는 기관이라면 이 지점부터 먼저 점검해야 한다.

7. 제언

30년 전 인터넷이 그랬듯, 자본시장 인프라는 한 번 만들어지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 캔톤 네트워크 위에서 결정되고 있는 거버넌스 구조와 토큰 표준, 슈퍼 검증인 명단이 다음 세대 자본시장의 골격이 된다. 표준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합류한 기관과 표준이 굳어진 뒤에 따라잡으려는 기관 사이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좁히기 어렵다.

첫걸음은 작아도 된다. 검증인 노드 한 대를 위탁하는 결정, Daml 인증 과정에 개발자 한 명을 보내는 결정, 1~3개월의 평가 단계에 들어가는 결정. 무엇이든 좋다. 다만 그 첫걸음을 떼는 파트너로 캔톤 네트워크를 고려할 이유는 분명하다. 글로벌 주요 금융기관이 이미 같은 인프라 위에 자리를 잡았고, 아시아로 확장되는 흐름이 그 선택을 뒷받침한다.

1996년의 과거 그리고 오늘,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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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캔톤 네트워크(Canton Network)로부터 일부 원고료 지원을 받았으나,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결론과 권고사항, 예상, 추정, 전망, 목표, 의견 및 관점은 작성 당시의 정보를 바탕으로 하며 예고 없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에 당사는 본 보고서나 그 내용을 이용함에 따른 모든 손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정보의 정확성, 완전성, 그리고 적합성을 명시적으로나 암시적으로 보증하지 않습니다. 또한 타인 및 타조직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거나 반대될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정보 제공의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법률, 사업, 투자, 또는 세금에 관한 조언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증권이나 디지털 자산에 대한 언급은 설명을 위한 것일 뿐, 투자 권고나 투자 자문 서비스 제공을 제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자료는 투자자나 잠재적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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