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 대출 시장의 권력은 프로토콜에서 ‘판단권’을 가진 큐레이터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시장 진입 전략은 결국 이 판단권을 빌릴 것인가, 공급할 것인가, 직접 가질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Key Takeaways
DeFi 시장에도 전통 자산운용사의 역할이 부상하며, 프로토콜과 거버넌스가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대는 끝났다.
시장은 초기 단계지만, 자본과 유통 경로는 이미 상위 큐레이터들에게 집중되며 이들의 운용 기록이 기관의 참고 기준이 되고 있다.
시장 진입 경로는 큐레이터를 백엔드로 쓰는 ‘유통형’, 온체인에 자산을 태우는 ‘공급형’, 직접 큐레이터가 되는 ‘운용형’ 세 가지다.
선택한 경로에 따라 쥐게 되는 통제권, 필요한 역량, 그리고 떠안아야 할 리스크가 확연히 달라진다.
핵심은 DeFi 진입 여부가 아니라, “어떤 판단권을 남에게 맡기고, 어떤 판단권을 직접 챙길 것인가”이다.
1. 온체인 자산운용 전문가, 리스크 큐레이터
전통 금융이 오래전부터 판단권과 역할을 분리해 온 것처럼, 암호화폐 시장 역시 산업이 고도화되며 각 기능을 전담하는 전문 플레이어들이 자리 잡았다. 전통 금융의 분업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자산운용회사: 펀드의 ‘두뇌’로서 전략을 짜고 수탁회사에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다.
수탁회사: 자산을 보관하고 운용사의 지시대로 투자를 집행하며 감시 역할도 겸한다.
판매회사: 펀드 상품을 투자자에게 유통해 자금을 끌어모은다.
암호화폐 시장에도 이처럼 각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들이 존재한다. 본래 DeFi는 구조상 스마트 컨트랙트 코드에 전적으로 기대는 환경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코드만으로 온체인 위험을 완벽히 대비하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온체인 대출을 안전하게 굴리기 위해 복잡한 위험을 평가하고 조율해 줄 ‘리스크 큐레이터’라는 전문가 집단이 새롭게 등장했으며, 이들이 곧 온체인 생태계에서 ‘자산운용회사’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2. 전문가가 없던 초기 DeFi 시장
초기 DeFi(Aave, Compound 등)는 하나의 프로토콜이 대출 인프라와 리스크 기준 설정을 통째로 관리하는 구조였다. 당시에도 리스크 큐레이터는 존재했지만, 모든 자산이 하나의 거대한 풀에 묶여 있었기에 이들의 역할은 프로토콜 전체의 리스크 파라미터를 조율하는 전반적인 ‘위험 관리자’ 수준에 머물렀다. 변동성 높은 다양한 자산이 담보로 채택되면서, 단일 구조 특성상 하나의 불량 자산이 전체 시스템 손실로 번질 전염 위험이 커졌다.
담보 자산과 대출 조건을 마켓 단위로 분리한 Morpho가 등장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하나의 거대한 풀이 아닌 이를 쪼개놓은 다중 볼트(Vault) 구조를 통해 자산운용 전략이 모듈화되면서, 리스크 큐레이터의 역할 역시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단일 프로토콜의 정해진 틀 안에서 방어적으로 관리만 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외부 전문가가 각자의 고유한 기준에 맞춰 독립적인 대출 볼트를 직접 설계하고 운용할 수 있는 환경이 열렸다.
결과적으로 인프라와 리스크 판단권이 완벽히 분리되면서, 리스크 큐레이터는 단순한 시스템 위험 관리자를 넘어 다수의 볼트를 주도적으로 굴리는 암호화폐 시장의 ‘자산운용사’로 진화하게 되었다.
3. 시장을 이끄는 플레이어들
2026년 5월 기준 리스크 큐레이터 시장의 운용자산 규모는 약 $7B이다. 이 $7B의 70%는 상위 3개 팀이 점유하고 있다. 시장이 2025년부터 본격화되었음에도 자본의 집중화가 나타난 건, 자본이 특정 팀들의 검증된 운용 기록(트랙 레코드)을 쫓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세 팀의 성공 경로는 각기 다르다.
Steakhouse: 미국 국채 등 우량 실물자산(RWA) 도입을 주도해 온 보수적 큐레이터다. Coinbase 대출 서비스의 백엔드 역할을 하며 유통망을 뚫었고, 운용자산 $1.53B로 시장 1위다 (2026년 2월 기준). 이들은 단순 자산 규모를 넘어 “어떤 실물자산이 DeFi에서 합당한 담보인지” 그 기준을 만드는 팀이다.
Sentora: AI 리스크 모델과 기관 데이터 인프라를 탄탄하게 갖춘 팀이다. 대형 거래소 Kraken의 백엔드로 연결되어 기관 자본이 유입되는 통로를 확보했다. $1.34B 규모로 2위이며 , 거래소와 기관 고객을 잇는 ‘유통 경로’ 확보에 성공했다.
Gauntlet: 원래 리스크 파라미터를 시뮬레이션하던 온체인 정량 분석 회사였다. 2025년 10월 $775M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풀에 몰렸을 때, 10일 만에 급락했던 수익률(APY)을 정상화시키며 실력을 입증했다. $1.29B 규모로 3위이며 , 대규모 자금 유입 시의 리스크 방어와 위기 대응력을 갖춘 팀이라는 인식을 확보했다.
결국 현재 단계에서 리스크 큐레이터 시장은 단순한 TVL(운용자산규모) 경쟁이 아니다. 담보 기준, 유통 채널, 리스크 대응력 등의 기준을 선점하는 싸움이다.
4. 전통 자산운용업 vs DeFi 리스크 큐레이터
Morpho로 인해 본격적으로 마켓이 쪼개지면서 각 담보에 대한 판단을 내려줄 전문가가 필요해졌다. 이에 Steakhouse 같은 전문 리스크 관리팀이 DeFi 생태계에서 리스크 큐레이터를 맡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해 DeFi는 전통 자산 운용 프로세스와 닮아가고 있다.
위 구조도를 상단에서 하단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 흐름에 따라 살펴보면, 현재의 DeFi 인프라가 전통 금융의 분업 체계를 어떻게 온체인에 구현하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자금의 조달과 유통 (상단): 가장 상단에는 자금의 공급처인 기관 투자자가 위치한다. 이들의 대규모 자본은 전통 금융의 판매사(증권사) 역할을 대신하는 대형 CeFi 거래소나 플랫폼을 통해 온체인 생태계로 유입되고 유통된다.
전략 설계와 리스크 통제 (중단): 그 아래 단계에서는 유입된 자산의 운용 방향을 결정하는 ‘DeFi 리스크 큐레이터’가 자리한다. 이들은 전통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PM) 및 리스크 위원회와 동일하게, 편입할 자산의 기준과 한도를 설정하고 전반적인 투자 전략을 기획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상품 조립과 자산 수탁 (하단):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략은 하단의 ‘볼트(Vault) 인프라’를 통해 실제 투자 가능한 온체인 상품으로 구현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밑단에 위치한 ‘대출 프로토콜 프리미티브’가 전통 금융의 수탁 및 거래 인프라처럼 자산을 보관하고 실질적인 거래 정산을 코드로 집행한다.
이처럼 자금 조달부터 운용, 수탁에 이르는 전 과정이 전통 금융과 유사한 분업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는 기존 전통 금융권 기관들에게 온체인 대출 시장이 더 이상 미지의 영역이 아닌, 익숙하고 구조화된 시장으로 다가오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자연스러운 시장 진입의 기회로 이어지고 있다.
5. 전통 금융과 닮은 산업, 누구에게 기회가 있는가?
온체인 대출 인프라가 전통 자산운용 생태계와 유사한 분업 체계를 갖추면서 기관의 진입로가 열렸지만, 모든 영역의 진입 장벽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유통 영역: 고객과 맞닿은 시장으로, 이미 대형 암호화폐 기업들이 선점해 포화 상태다. 전통 금융사가 당장 이들과 접점 경쟁을 벌이기에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운용 영역: 철저히 금융 노하우와 맨파워가 중심이 되는 분야다. 자산의 위험을 평가하고 통제하여 상품화하는 업무는 전통 자산운용사의 본업과 일치한다. 복잡한 시스템 개발 없이, 기존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이미 구축된 모듈형 인프라 위에 적용하여 곧바로 사업 모델을 확보할 수 있다.
수탁·인프라 영역: 자산 보관과 거래 처리를 담당하며, 고도의 블록체인 엔지니어링 역량이 요구되는 기술 집약적 사업이다. 전통 금융사가 직접 시스템을 구축하고 경쟁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크다.
이처럼 기술이나 플랫폼 선점이 필요한 다른 영역과 달리, 운용 영역은 전통 금융사가 가진 본질적인 리스크 관리 역량만으로도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회의 창이다.
현재 기관들이 DeFi 시장에 참여하는 방식은 크게 유통형, 공급형, 운용형 세 가지로 나뉜다. 어떤 경로를 택하든 시장을 구동하는 핵심 엔진은 자산운용사의 ‘리스크 큐레이션’ 역량이다.
5.1. 유통형: 큐레이터를 백엔드로 쓰는 방식
검증된 외부 큐레이터를 백엔드에 연결해 빠르게 진입하는 방식이다. 기존 고객 채널은 있지만 직접 운용 역량이 부족한 거래소나 핀테크에 맞다. 전략은 외부에 맡기지만, 큐레이터 선택에 따른 평판 리스크와 설명 책임은 직접 져야 한다.
고객 접점은 강력하지만 온체인 대출의 복잡한 위험을 직접 관리하기 부담스러운 중앙화 거래소들이 선택한 방식이다. 이들은 검증된 외부 리스크 큐레이터를 백엔드로 연결하여 대출 서비스를 출시했다. 거래소는 자사 플랫폼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유통하고, 실질적인 담보 평가와 위험 관리는 파트너십을 맺은 외부 리스크 큐레이터에게 일임하는 구조다.
5.2. 공급형: 자산을 온체인 레일에 태우는 방식
RWA나 신용 자산 등을 보유한 운용사가 자기 자산을 시장에 직접 공급하는 방식이다. Apollo처럼 자산을 공급함과 동시에 Morpho 거버넌스 토큰을 취득해, 자신의 자산이 유통될 인프라의 표준(담보 기준 등)까지 주도할 수 있다. 다만 자산 표준화와 규제 관련 인프라 구축이 까다롭다.
대형 사모펀드나 실물 자산(RWA)을 보유한 기관이 자사 자본을 온체인 레일에 직접 태우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Apollo는 자산을 단순히 공급하는 것을 넘어, 주요 대출 프로토콜의 거버넌스 토큰을 취득하는 행보를 보였다. 자신들이 가진 실물 자산이 온체인 시장에서 더 유리하고 안전한 ‘공식 담보’로 인정받도록 규칙과 표준을 주도하기 위함이다.
다만, 자산 공급자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 자산이나 담보로 등록될 수는 없다. 해당 자산이 실제로 안전한지, 온체인에서 청산이 터졌을 때 즉각 현금화가 가능한지 냉정하게 따져줄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산의 적합성을 깐깐하게 검증하고 보증해 주는 리스크 큐레이터의 평가 역량이 필수적으로 결합된다. 결국 자산 공급형 경로 역시, 운용사의 리스크 검증 능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성립할 수 있다.
5.3. 운용형: 직접 큐레이터가 되는 방식 (Bitwise)
자산 운용사가 직접 전략을 짜고 볼트를 운용하는 방식이다. Bitwise는 온체인 볼트를 “ETF 2.0”이라 규정하며 직접 뛰어들었다. 수수료와 담보 기준 등 가장 막강한 통제권을 쥐지만, 운용 실패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짊어져야 하므로 자체 리스크팀을 둔 자산운용사에 적합하다.
전통 자산운용사가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리스크 큐레이터로 전면에 나선 방식이다. Bitwise는 온체인 대출 볼트(Vault) 구조를 ‘ETF 2.0’으로 정의하며 시장에 직접 진입했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포트폴리오 구성 능력과 위험 제어 시스템을 바탕으로 볼트를 직접 설계하고 통제하며, 자산 운용에 따른 수수료 모델을 온체인에서 직접 확보하고 있다.
6. 거대 자본이 몰려오기 전에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온체인 대출 시장이 고도화될수록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는 쪽은 전통 자산운용사일 가능성이 높다. DeFi 생태계가 모듈화되고 분업화되면서, 이 시장에서 진짜 필요한 역량이 바뀌었다. 코드를 짜는 능력이 아니라 담보를 심사하고 리스크 한도를 설정하는 전통 금융의 전문성이다. 수십 년간 이 일을 해온 기관들의 경쟁 우위가 온체인에서도 통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지금의 DeFi 시장 규모는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직접 참여하기엔 망설여지는 규모이다. 글로벌 전통 자산운용 시장은 약 $147T다. BlackRock 한 곳의 운용자산만 해도 $14T에 달한다. 반면 DeFi 시장 전체는 약 $80B이고, 그 중에서도 리스크 큐레이터들이 다루는 시장은 $7B에 불과하다. BlackRock 운용자산의 2,000분의 1 수준이다.
그런데 이 압도적인 규모 차이가 오히려 성장 여력을 보여준다. 기관 자본은 리스크가 통제되지 않는 곳엔 들어오지 않는다. 리스크 큐레이터들이 온체인에 안전하게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레일을 깔고, 규제 윤곽이 잡히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147T 규모에서 극히 일부만 흘러와도 $80B짜리 시장은 빠르게 팽창한다.
시장이 작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지금 리스크 큐레이터 시장의 메인 플레이어는 손에 꼽힌다. 기관이 온체인으로 들어오기 위한 레일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 레일을 먼저 깔아둔 팀이 기준을 정한다.
늦게 참여한 기관들은 더 안전하고 명확한 시장을 얻겠지만, 지금 정해진 기준에 참여하는 여러 기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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