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낸스 등 다수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주식 거래 서비스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 금융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거래소들의 움직임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봅니다.
Key Takeaways
암호화폐 거래 수수료 모델의 한계,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 같은 무기한 선물 DEX의 성장, 트럼프 행정부 이후 열린 규제 환경이 겹치며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주요 거래소들이 향하는 곳은 주식·파생상품 같은 전통 금융 상품이고, 형태는 전통 금융에 가까워지고 있다.
과거엔 중앙화 거래소가 암호화폐 생태계의 핵심 유동성 공급자였으나 지금 거래소의 최우선 과제는 전통 금융을 향한 사업 재편이다.
암호화폐의 각자도생 시대가 열리고 있다. 거래소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프로젝트와 그렇지 못한 프로젝트가 갈리게 된다.
1. 바이낸스에서 애플 주식을 산다
지난 6월 1일부터 바이낸스(Binance) 앱에서 애플(Apple, AAPL), 구글(Google, GOOGL) 같은 주식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그 후로 하루 뒤인 6월 2일 KOSPI 인기 종목인 SK하이닉스, 삼성전자, 현대차 주식의 거래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바이낸스가 주식 시장에 발을 들이려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4월 테슬라(Tesla, TSLA), 애플(AAPL),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MSFT) 등의 주식 토큰 거래를 지원했다가, 여러 압박 속에 같은 해 7월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했다.
당시 구조적 문제는 세 가지였다. 1) 주식 토큰의 법적 지위가 증권인지 파생상품인지 불명확했고, 2) EU 규정상 의무인 투자설명서가 없었으며, 3) 바이낸스 자체에는 직접 인가가 없었다. 독일 BaFin과 영국 FCA, 홍콩 SFC가 모두 이를 문제 삼았다.
이번 출시는 다르다. 바이낸스가 아부다비 글로벌 마켓(ADGM) 인가 브로커딜러를 통해 주문 체계를 구축하며 법적 지위를 “브로커리지 서비스”로 명확히 했다. 2021년처럼 상품 발행 주체를 두고 다툴 여지가 줄었다.
공교롭게도 바이빗(Bybit)이 비슷한 시기에 TradFi 무기한 선물 시장을 출시해서 KOSPI 인기 종목인 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을 지원하고 스페이스X(SpaceX, SPCX)의 무기한 선물 거래를 지원한다. 코인베이스(Coinbase)도 SPCX 선물 거래를 지원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왜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비슷한 시점에 전통 금융앱에 가까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2. 거래소를 둘러싼 세 가지 압력
거래소들이 암호화폐 중심 모델에서 멀어지는 데는 세 가지 압력이 작용했다.
2.1. 암호화폐 거래량 급감
첫 번째 압력은 암호화폐 거래량의 감소다. 암호화폐 거래소 수익은 결국 거래량에 종속된다. 그리고 그 거래량은 시장의 분위기에 의해 결정된다.
거래소별 알트코인 거래량은 바이낸스 기준, 일평균 스팟 거래량이 2025년 10월 고점 약 $45B에서 현재 $7.7B으로 약 85% 감소했다. 타 중앙화 거래소 합산도 고점 약 $63B에서 $18.8B으로 70% 정도 감소했다.
감소한 암호화폐 거래량과 함께 거래 수수료에 기댄 비즈니스 모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2. 하이퍼리퀴드의 온체인 거래량 흡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외한 알트코인 거래량과 하이퍼리퀴드 내 주식·원자재 등의 RWA 자산 거래량 비교가 현 상황을 더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가 주식과 원자재 선물 거래를 지원하며 온체인 유동성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2026년 중반 기준 하이퍼리퀴드 무기한 선물 거래량 상위 30개 자산 중 23개가 크립토가 아닌 주식과 원자재였다.
온체인이 암호화폐만의 영역이라는 전제가 무너졌다. 더군다나 중앙화 거래소의 거래량을 뛰어넘는 탈중앙화 거래소의 등장은 여러 거래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2.3. 규제 변화
세번째 압력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규제 지형이 바뀜에 따라 가해졌다. SEC는 코인베이스와 크라켄을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을 취하했다. 규제 기관이 적대적이던 시절엔 전통 금융 인가를 신청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였지만 이젠 그 인가가 차별점을 부여하며 신뢰의 증표가 되어줄 수 있다.
규제 하에 있는 중앙화 거래소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앞세워 새로운 방향성을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이다.
3. 중앙화 거래소별 생존 전략
중앙화 거래소들은 동시에 비슷한 종류의 압박을 받았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움직임은 서로 달랐다.
3.1 바이낸스(Binance): 에브리띵 스토어(Everything Store)
세계 최대 중앙화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방향성은 심플하다. “Everything Store”가 되어 모든 거래가 본인들 플랫폼 안에서 발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용자의 이탈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실 온체인 공략을 먼저 시도했고 성공적이었다. 일찍이 거래소로 성공한 바이낸스는 온체인 생태계 공략을 목적으로 2019년 4월 바이낸스 체인을 출시했고, 2025년 상반기에는 바이낸스 알파를 출시해 성공적으로 온체인 파이를 가져갔다.
하지만 2026년에 들어서며 유동성이 주식 시장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하이퍼리퀴드가 주식, 원자재로 온체인 유동성을 흡수하기 시작하자, 바이낸스가 키운 온체인 사용자 기반도 위협받기 시작했다.
다만 바이낸스는 온체인이 아니라 2억명 이상의 기존 유저 풀을 공략해 주식 시장을 직접 런칭하는 것에 집중했다. 온체인에서 하이퍼리퀴드와 정면 경쟁하는 것보다, 이미 확보한 사용자 기반을 잡아두는 쪽이 바이낸스 입장에서 더 유리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이렇다. 바이낸스 프론트엔드를 통해 주문이 들어오면, ADGM 인가 브로커딜러인 네스트 트레이딩(Nest Trading)이 주문을 받아 알파카 시큐리티즈(Alpaca Securities)로 넘긴다. 실행, 청산, 결제, 수탁은 모두 알파카가 맡는다. 바이낸스는 증권을 직접 보관하지 않는다. 규제 직접 적용을 피하기 위한 구조적 선택이다.
눈여겨볼 점은 네스트 트레이딩이 바이낸스 계열사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알파카의 소수 지분도 보유하고 있으며, 주문 흐름 수수료의 50%, 주식 대여 수익의 65%를 가져가는 수익 분배 구조다.
결국 바이낸스가 인프라를 직접 구축해, 방향성 자체를 에브리띵 스토어로 전환하고, 알트코인 거래량이 트렌드에 따라 하이퍼리퀴드와 주식으로 이동하기 전에 기존 유저를 붙잡아두려는 포석이다.
3.2 Bybit: 온오프체인 투트랙 전략
바이빗은 2018년 파생상품 거래소로 출발해 최대 100배 레버리지와 낮은 수수료로 급성장했다. 지금은 두 개의 트랙을 동시에 밟고 있다. 중앙화 거래소 유동성을 온체인으로 이식하는 것과, 중앙화 거래소에서 전통 자산 파생상품을 직접 상장하는 것이다.
온체인 트랙이 먼저였다. 2025년 6월, 백드(Backed)의 xStocks를 바이빗 스팟에 상장하며 토큰화 주식 협력의 첫 단추를 꿴 뒤, 11월 맨틀·백드와 3자 협력으로 엔비디아(NVIDIA, NVDA)·애플(AAPL)) 등 미국 주요 주식을 맨틀 온체인에 올리는 xStocks를 정식 출시했다.
2026년 5월에는 맨틀 생태계의 DEX인 플럭시온(Fluxion) 위에서 아토믹 RFQ(Atomic RFQ)를 활성화하며 발행사 직접 체결 구조로 고도화했다. 아토믹 RFQ는 AMM이 아니라 발행사에게 직접 호가를 요청해 실시간으로 체결하는 방식으로, 기관이 전통 금융에서 요구하는 실행 품질을 온체인에서 구현한 것이다.
바이빗에서도 분주히 움직였다. 바이낸스와 비슷한 압력을 받은 바이빗 또한 2026년 4월 TradFi 무기한 선물 상품을 출시하고 매주 새로운 종목을 추가했다. 테슬라(TSLA)·엔비디아(NVDA)·애플(AAPL) 등 미국 주요 주식과 금·은·원유를 USDT 결제 구조로 24시간 거래할 수 있게 했다. 6월 4일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무기한 선물을 상장했으며 SpaceX의 Pre-IPO까지 지원하고 있다.
두 트랙 모두 결과적으로 여러 종류의 전통 자산을 온오프체인에서 더 정밀하게 거래할 수 있는 인프라를 쌓는 것을 겨냥하고 있다. 바이낸스와 다른 점은 플럭시온과 맨틀 등 온체인에 대한 접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3.3 Coinbase: 가장 신뢰받는 미국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2021년 나스닥 상장, 2025년 5월 S&P 500에 편입됐다. 월스트리트를 등에 업고 현시점 가장 큰 신뢰를 얻고 있는 중앙화 거래소이다.
온체인에도 발을 걸쳤다. 2023년 출시한 이더리움 L2 베이스(Base)는 2025년 L2 전체 TVL의 절반 가까이를 점유하며 빠르게 올라섰다. 하지만 2026년 들어 성장이 정체되고 베이스가 코인베이스의 핵심 우선순위는 아니라는 인상을 줬다.
코인베이스가 진심으로 승부를 건 곳은 기관 고객이었다. 2025년 8월 29억 달러에 데리빗(Deribit) 인수를 완료하며 글로벌 크립토 옵션 시장의 약 85%를 가져왔다. 미국 CFTC 인가 선물 중개 서비스(FCM)를 출시했고, 기존 스팟, 선물, 무기한 선물을 단일 담보 풀로 통합한 크로스 마진을 출시해 기관 고객 기반을 확장했다. 그 해 헤지펀드·자산운용사 등 기관 고객의 대출 잔액은 분기 기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2025년 12월에는 기존 앱에서 주식·ETF 거래를 수수료 없이 열었다. 바이낸스가 별도 브로커리지 인프라를 얹고, 간접적으로 접근한 것과 달리 코인베이스는 쌓아온 규제 신뢰 위에서 직접 거래를 지원한다. 또한 지난 6월 4일, Space X의 Pre-IPO 거래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하이퍼리퀴드가 규제 밖에서 다양한 상품을 출시해 유동성을 확보할 때, 미리 주식 거래 시장을 연 코인베이스는 빠르게 맞불을 둘 수 있게 되었다.
3.4 Kraken: 암호화폐 연방 은행
2011년 설립된 크라켄은 크립토 업계 최장수 거래소 중 하나다. 크라켄의 방향성은 라이선스를 통합하고, 직접 인프라를 쌓고, 연방 규제 하의 기관 암호화폐 수탁 은행이 되는 것이다.
먼저 규제 인프라 구축을 최우선시 했다. 2025년 3월 닌자트레이더를 15억 달러에 인수해 CFTC FCM 라이선스와 200만 리테일 트레이더를 가져왔다.
2026년 4월에는 비트노미얼을 5억 5천만 달러에 추가 인수했다. DCM, DCO, FCM 세 가지 CFTC 라이선스를 10년에 걸쳐 취득한 유일한 크립토 네이티브 플랫폼이었다. 2026년 3월 연준 마스터 계좌를 확보했고, 5월에는 OCC에 국가 신탁회사 인가를 신청했다.
온체인도 등한시한 건 아니었다. 2024년 12월 자체 L2인 잉크(Ink)를 출시했고, 잉크 위에서 대출 프로토콜 타이드로(Tydro)와 퍼페추얼 DEX 나도(Nado)를 연이어 출시했다. 2026년 1월에는 디파이 언(DeFi Earn), 5월에는 비트코인 볼트(Bitcoin Vault)도 내놨다. 다만 이 상품들의 중심은 기관에게 설명 가능한 자산들로 구성되어 있다. 알트코인은 크라켄의 온체인 전략에서도 우선순위가 될 수 없었다.
타 거래소가 주식 거래로 사용자를 잡으려는 동안, 크라켄은 기관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크립토 네이티브 은행이 되는 쪽을 택했다.
위에서 알아본 중앙화 거래소의 향후 방향성과 전략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알트코인을 주요 계획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4. 암호화폐는 어떻게 되는건가?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중앙화 거래소는 유동성 공급자였다. 거래소가 토큰을 상장하고, 거래량을 만들어 줬기에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생존해왔다.
근본적인 문제는 암호화폐 중 실제 수익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토큰 가격을 받쳐온 건 대체로 프로토콜의 실적이 아니라 거래소의 상장과 런치풀 같은 초기 유동성 지원이었다.
그 구조가 작동하려면 거래소와 트레이더가 지속적으로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리테일 거래량은 줄어들고 있다. 거래량이 없는 이상 중앙화 거래소의 상장과 마케팅 지원도 줄어들 것이고 암호화폐 생태계가 버틸 수 없다.
사실상 시장 자체가 중앙화 거래소의 지원에 의존하기 보단 실제 프로덕트 수익을 바탕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한 프로젝트의 토큰을 원하고 있다. 하이퍼리퀴드의 HYPE가 대표적인 사례다. 어떻게 보면 온체인 유동성을 주식으로 빨아들인 당사자임에도, 현재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암호화폐 중 하나이다. 그전의 중앙화 거래소와 암호화폐 간의 상생 관계가 옅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중앙화 거래소 입장에서 봐도 그렇다. 거래소는 리테일 거래량과 사용자 수가 핵심 기반이 된다. 그런데 암호화폐 거래량에만 집중하면 그 핵심 기반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시장이 더이상 신규 상장 암호화폐에 예전같은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프라와 사용자 풀을 지키는 동시에 활용 가능한 다른 먹거리를 찾아나설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식 파생상품, 수익 상품, 수탁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의 방향 전환이 수많은 알트코인에게 각자도생을 선언한 셈이다.
예전엔 중앙화 거래소가 암호화폐와 함께 하락장을 버텼다. 하지만 지금은 암호화폐 없이 성장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암호화폐에게 이번 겨울이 더 추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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