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카드의 월간 결제 규모는 15억 달러를 돌파하며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가 크립토 카드가 진짜 금융 인프라가 됐다는 뜻인지, 아니면 아직 발전시켜야 하는 모델인지, 해당 리포트에서 살펴봅니다.
Key Takeaways
크립토 카드는 기존 결제망을 활용해 가맹점 구축 병목을 건너뛰었다는 점에서 1990년 직불카드의 상용화 직전 구조와 유사하다. 다만 급여 입금이나 고정 지출 등 일상 금융과 밀착된 주거래 계좌 관계 구축은 여전한 과제로 남아있다.
연환산 180억 달러 규모의 시장에서 리닷페이(RedotPay) 단일 서비스가 압도적으로 시장을 주도하며, 주요 유저가 신흥국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글로벌 보편 금융 인프라라기보다 달러 접근성이 낮은 소외 지역의 특정 유즈케이스를 충족하는 보조적 도구에 가깝다.
결제 볼륨의 양적 성장이 크립토 카드의 금융 인프라 안착을 보장하지 않는다. 향후 시장 자금 흐름 구간의 직접 소유, 대형 기관 미진출 지역 선점, 그리고 인프라 상위의 일상 금융 관계 직접 장악 여부에 따라 재편될 것이다.
1. 크립토 카드는 1990년의 직불카드와 유사하다
1958년 9월,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는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 주민 6만 5,000명에게 카드를 우편으로 발송했다. 그러나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발행된 최초의 결제 카드는 1년 만에 연체율 22%, 손실 2,000만 달러라는 처참한 결과로 돌아왔다. 이후 전자 정산 시스템 구축에 15년, 직불카드 등장에 17년, 비자(Visa)가 글로벌 표준이 되기까지는 총 20년이 걸렸다.
가장 큰 차이는 ‘일상적 금융 관계’의 정착 여부에 있다.
1975년 처음 등장한 직불카드는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급여 입금이 확산되면서 비로소 주거래 은행 계좌의 핵심 수단이 됐다. 반면 현재의 크립토 카드는 스테이블코인 예치에서 출발한다. 아직 대부분의 크립토 지갑에는 반복적인 급여 입금이나 고정 지출 같은 일상적 금융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1990년의 직불카드의 전후 단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크립토 카드의 패권은 카드 발급 수보다 일상 속에서 활용되는 계좌, 혹은 이와 같은 성장 트리거를 누가 먼저 만드느냐에 따라 가져갈 수 있다.
2. 월 15억달러 결제에도 불구하고 안착 단계로 보긴 어렵다
아르테미스(Artemis)에 따르면 크립토 카드의 월간 결제 볼륨은 2023년 초 1억 달러 수준에서 2025년 말 15억 달러로 늘었으며, 연환산 기준으로는 180억 달러를 넘어섰다. 온체인 추적 범위에 따라 단순 연환산 값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결제 볼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명확히 드러난다.
다만 지표를 상세히 들여다보면 특정 서비스와 지역에 대한 편중이 두드러진다. 리닷페이(Redotpay)라는 단일 서비스에서 과반수 이상의 거래가 발생하고 있으며, 해당 서비스의 웹 트래픽 상위 국가는 방글라데시(11%), 인도(8%), 이집트(6%), 나이지리아(6%) 등 주로 신흥국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미국의 비중은 4%에 불과하다.
즉, 현재 크립토 카드의 실질적인 수요는 선진국 주류 시장이 아닌 달러 접근성이 낮은 소외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기존 금융 네트워크와의 규모 격차는 여전히 크다.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연간 결제 처리 규모가 24~25조 달러에 달하는 반면, 크립토 카드의 연환산 결제 볼륨은 180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기존 시장과의 체급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일상 결제 수단으로서의 활용도를 나타내는 지표 역시 낮다. 거래 속도는 특정 자산이 일정 기간 동안 결제에 평균 몇 번 쓰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그 자산이 보유보다 지출에 활발히 쓰인다는 뜻이다.
비자의 온체인 스테이블코인 거래 추적 결과에 따르면 리테일 거래 속도는 0.08에 그쳤다. 이는 일반 법정화폐(M1)의 유통 속도인 1.65와 비교해 약 20분의 1 수준이다. 즉 사용자들이 스테이블코인을 급여처럼 받아 일상적으로 쓰고 다시 채우기보다는, 한 번 충전해두고 가끔씩만 꺼내 쓰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결제 볼륨의 양적 성장이 곧 보편적인 시장 안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크립토 카드 볼륨의 상당 부분은 달러 계좌 접근성이 낮은 신흥국 사용자층에서 발생하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는 크립토 카드가 어느정도 실질적인 생활 금융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다만 선진국 시장에서는 아직 뚜렷한 시장 적합성(PMF, Product-Market Fit)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급여의 반복 입금이나 자동이체 같은 긴밀한 계좌 관계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결과적으로 자금의 유입 경로와 지출 성격을 고려할 때, 현재의 크립토 카드는 보편적인 금융 인프라라기보다는 특정 국가의 유즈케이스를 충족하는 보조적 도구에 가깝다.
다만 이러한 성장세를 발판삼아 각 영역을 고도화하는 주요 플레이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3. 크립토 카드 섹터를 이끄는 주요 플레이어 소개
크립토 카드 섹터는 크게 네 가지 비즈니스 모델로 분류되며, 각 플레이어는 서로 다른 레이어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백엔드 인프라 제공에 집중하는 기업부터, 카드 형태만 차용하고 뒷단의 구조를 완전히 차별화한 모델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
3.1. 발급 인프라 모델
먼저 흔히 아는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크립토카드 생태계에서도 결제망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발급 인프라 레이어가 있으며 소비자 카드까지 내려간다.위 그림처럼 발급 인프라 레이어 안에는 두 가지 구조가 공존한다. 1) 프로그램 매니저(운영)와 발급은행(멤버십·정산)이 분리된 전통적 2단 구조, 2) 레인·립처럼 이 둘을 하나로 압축한 풀스택 발급사다.
먼저 은행과 함께 2단 구조를 이루는 프로그램 매니저 세 곳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표면적으로는 별개 브랜드인 카드들도 뒷단을 들여다보면 소수의 프로그램 매니저로 수렴한다. 팬텀 카드, 메타마스크 카드, 노시스 페이가 대표적인 예다.
카스트(KAST), 이더파이(EtherFi), 트리아(Tria), 플라즈마 원(Plasma One) 등의 카드 브랜드들도 외견상 독립된 서비스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와 같이 소수의 인프라 위에서 구동된다. 특히 레인에 대부분의 소비자 카드가 연결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발급 인프라 레이어에 여러 브랜드가 집중되는 구조이다 보니, 이미 관련 노하우를 갖춘 전통 네오뱅크 또한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니움(Nium)이 2026년 3월 비자·마스터카드 양쪽에서 카드를 발급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 카드 발급 플랫폼을 출시했다. 그 외에도 스트라이프(Stripe)가 2025년 초 11억 달러에 인수를 완료한 브릿지(Bridge), 마스터카드가 2026년 3월 최대 18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한 비브이엔케이(BVNK)와 같은 전통 핀테크 인프라 플레이어들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 레이어에는 풀스택 발급사·기존 프로그램 매니저·신규 진입 핀테크가 동시에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단순 발급 기능만으로는 진입 장벽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추세다.
실제로 레인은 차별점으로 기존 카드사들이 며칠에 걸쳐 정산하는 것과 달리 매일 비자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으로 정산해 이더파이와 같은 발급사의 자금 회전 속도를 높이는 일일 정산 구조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AI 에이전트가 프로그래밍 방식으로 일회용 가상 카드를 발급할 수 있는 에이전트 컨트롤 레이어(Agent Control Layer)를 출시하며 단순 카드 발급 인프라를 넘어선 기능 확장에 나섰다.
결국 결제 인프라를 제공하는 걸 넘어, 전통 인프라가 신속하게 제공하지 못하는 차별화된 기능을 확보하고 제공하는 발급 모델이 성공하게 될 것이다.
3.2. 거래소 기반 모델
거래소에서 카드는 직접적인 수익원이라기보다 사용자 이탈 방지를 위한 도구이다. 이미 확보한 유저 베이스, 잔고, 거래 데이터를 기반으로 카드를 연동함으로써 플랫폼 이탈을 방지하는 효과를 노린다. 실제 수익은 카드 결제 자체가 아닌 거래 수수료, 대출, 예치금 운용 등에서 발생한다.
거래소들은 카드를 금융 슈퍼앱의 진입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캐시백을 자사 토큰으로 지급할 경우 토큰 가격 변동에 따라 실질 캐시백률이 불안정해지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스테이블코인 캐시백이나 잔고 이자 수익으로의 전환이 대안으로 꼽히지만, 미국의 경우 지니어스 법(GENIUS Act)의 이자 지급 금지 규제가 시장 확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3.3. DeFi 기반 모델
‘지갑이 곧 계좌’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자산을 중앙화 거래소에 수탁하지 않고 온체인에서 직접 보관하며 카드로 결제하는 모델이다. 자산 담보를 유지하면서 신용 한도를 제공하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나 볼트(Vault) 설정, 담보 관리, 청산 리스크 추적 등 사용자가 직접 관리해야 할 항목이 많아 인지적 비용이 높다. 이는 DeFi 기반 모델이 제한적인 사용자층을 형성하는 주요 원인이다.
DeFi 기반 모델은 결제 시점에 지갑 내 자산을 실시간으로 법정화폐로 변환하여 정산하는 구조다. 이 과정이 온체인 상에서 실행되기 때문에 거래마다 가스비(네트워크 수수료)가 발생하며, 처리 속도가 낮거나 혼잡도가 높은 블록체인에서는 수수료가 결제 금액을 초과하거나 승인이 지연되는 한계가 존재한다.
메타마스크 카드가 자체 레이어 2(L2) 네트워크인 리네아(Linea)를 채택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건당 가스비를 0.01달러 수준으로 절감해 소액 결제 시의 수수료 부담과 처리 지연 문제를 완화했다. 트리아의 가스리스 충전 기능 역시 충전 시 발생하는 가스비를 플랫폼이 대납함으로써 네트워크 선택 및 수수료 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자의 인지적 비용을 제거하는 방식을 취한다.
다만 자산의 비수탁과 결제 편의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사용자 경험이 기존 직불카드 수준으로 간소화되기 전까지는 이용자층이 암호화폐에 친숙한 유저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3.4. 스테이블코인 네오뱅크 모델
현재 크립토 카드 시장 볼륨의 과반수를 점유하고 있는 모델로, 카드보다 ‘계좌’의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스테이블코인 잔고를 기반으로 외환, 송금, 저축 기능을 연계하고 카드는 지출 수단으로 얹는 구조다. 자국 통화 가치가 불안정하고 송금 비용이 높으며 달러 접근성이 제한된 신흥국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다.
해당 모델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구매해 충전하는 선불카드 수준의 경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표에서 드러나듯 캐시백 전략은 시장 지위에 따라 갈린다. 압도적 점유율의 리닷페이와 전통 핀테크 정체성이 강한 레볼루트는 캐시백 자체를 운영하지 않는 반면, 카스트·플라즈마 원 같은 후발 주자는 USD 또는 자체 토큰 캐시백을 적극적으로 내세워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혜택만으로는 지속적으로 일상적인 사용에 크립토카드를 녹아들게 할 수 없다.
4. 결제 단일 기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전통 카드 및 네오뱅크의 선례에서 보듯, 단순 결제 서비스만으로는 가치 창출과 수익성 확보에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이들이 흑자 전환에 성공한 시점은 주거래 계좌 개념의 등장, 예대마진 등의 구조를 비즈니스 모델에 결합한 이후였다. 현재 크립토 카드 섹터 역시 동일한 임계점에 직면해 있으나, 미국의 지니어스 법이나 유럽의 MiCA 등 글로벌 규제가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이자 지급 및 자산 운용 경로를 제한하고 있어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거시적 환경의 압박을 역으로 분석하면, 향후 크립토 카드 플레이어들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 할 세 가지 핵심 전략 요건이 도출된다.결국 자금 흐름을 직접 장악하거나, 신흥국 시장의 유즈케이스를 방어하거나, 인프라 공급자가 대체할 수 없는 고유의 계좌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시장의 표준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직불카드 도입 이후 최종적으로 시장을 장악한 주체는 결국 더 많은 카드를 발급한 곳이 아니라 실질적인 ‘은행 계좌’를 선점한 플레이어들이었다. 현재 크립토 카드 섹터 역시 동일한 본질적 질문 앞에 서 있다.
결국 비자 결제 이전 단계의 자금 흐름을 직접 통제하고, 틈새시장을 선점하고 전통에서 주거래 계좌가 등장한 것 처럼 소비자 인프라를 장악해야 한다. 아무도 걸어오지 않은 길에서 글로벌 표준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크립토 카드는 우리 일상에 녹아드는 필수 요소가 아닌, 단순 혜택이 좀 더 좋아서 일부의 사람들만 사용하는 선불형 카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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